'로봇 심판'의 등장→과연 '인간 심판'들은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을까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2024. 3. 13.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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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지난 1월 대전에서 열린 ABS(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 시연회 모습. /사진=한화 이글스
투수가 던진 공이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을 때 주먹을 쥔 채 오른손을 들어 스트라이크를 외친 최초의 메이저리그(MLB) 심판은 빌 클렘(1874~1951)이었다. 그는 자주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 때문에 선수, 감독은 물론이고 야구 팬들에게 협박을 받았다. 클렘의 판정에 불만을 품고 있던 한 여성 팬은 경기장에서 "당신이 내 남편이었다면 난 당신의 커피에 독약을 타겠다"는 독설을 클렘 심판에게 했다.

어쩌면 2024시즌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 같은 야구 심판의 볼 판정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가 많이 완화될 것 같다. '로봇 심판'의 등장 때문이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국은 미국과 일본 프로야구보다 앞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ABS)을 올 시즌부터 도입했다.

'로봇 심판'은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 면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시킨 투구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KBO에 따르면 '로봇 심판'의 판정 결과는 최종적이며 이에 대한 항의와 이의 제기는 할 수 없다.

얼핏 보면 '로봇 심판'의 도입은 프로야구 심판들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심판의 필요성마저 약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 심판들은 '로봇 심판' 도입에 찬성하고 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볼 판정을 해야 하는 구심들은 '로봇 심판' 덕분에 선수, 감독, 팬들의 항의와 이에 따른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구연 KBO 총재가 ABS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OSEN
실제로 '로봇 심판'은 스트라이크 존의 일관성과 정확성이라는 측면에서 '인간 심판'보다 앞서 있다. 미국 보스턴 대학 연구진이 2018년 MLB 시즌 영상과 데이터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심판이 잘못한 볼 판정은 3만 4294개에 달했다.

일각에서는 '로봇 심판'이 등장하면서 홈 플레이트 뒤에서 야구 경기를 원만하게 진행해야 하는 엄파이어(구심)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한다. 하지만 이 부분은 크게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로봇 심판'은 어디까지나 엄파이어의 조수다. 로봇 심판의 역할은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으로 제한돼 있다. 야구 경기에서 펼쳐지는 더 복잡하고 다양한 상황에 대한 판정과 해석은 여전히 '인간 심판'의 몫이다.

오히려 걱정되는 건 엄파이어가 이끌어야 할 프로야구 경기의 시간 단축 문제다. KBO는 올 시즌 1군 리그에서 전반기에 피치 클락을 시범 운영하고 후반기에 정식 도입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피치 클락 규정의 핵심요소는 투구간 시간 제한이다. 주자가 누상에 없을 때는 18초, 있을 때는 23초 내에 투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타석간에는 30초 이내에 공을 던져야 한다.

물론 MLB가 이미 도입한 피치 클락은 야구 경기의 시간 단축 효과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는 선수와 심판들이 적응하는 데 '로봇 심판'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더욱이 피치 클락 제도 도입을 통한 시간 단축으로 흥행 상승 효과가 한국 프로야구에서 발생한다면 심판들은 새로운 압박감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크다. 피치 클락이 규정하지 않은 다양한 부분에 대해서도 심판이 개입해 전체 경기를 되도록 빠르게 진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기 떄문이다.

피치 클락을 위한 전자시계가 보이는 가운데 KT 박병호가 타격을 하고 있다. /사진=KT 위즈
한국 프로야구와는 다소 다른 상황이었지만 MLB에서 피치 클락 도입 이전부터 경기 시간 단축은 심판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지난 2001년 초반 MLB 사무국은 심판들에게 스트라이크 존을 넓게 해석하라는 지시를 내려 큰 논란이 됐다. 이런 지침을 내린 이유는 경기 시간 단축 때문이었다. 심판이 스트라이크 존을 유연하게 적용하면 9이닝당 평균 투구수가 285개에서 270개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적지 않은 MLB 심판들은 사무국의 특명에 따라 움직여야 했다. 이런 이유로 경기 초반과 후반의 스트라이크 존이 다소 다르다는 선수와 감독의 항의가 빗발쳤다. 경기 후반에는 시간 압박 속에서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이 눈에 띄게 넓어진다는 팬들의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이 와중에 아메리칸리그에서 엄파이어로 31년간 일한 래리 바넷은 젊은 후배 심판에게 MLB 사무국의 입장을 강압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 심판 감독관직을 사임하는 일도 벌어졌다.

분명 한국 프로야구가 도입한 '로봇 심판'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피치 클락 시스템과 향후 펼쳐질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한 KBO의 노력은 선수뿐만 아니라 심판에게 적지 않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아직 야구 심판 수난 시대가 종결됐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로봇 심판' 덕분에 그저 볼 판정 때문에 감독과 멱살잡이를 하거나 팬들의 인신공격에 시달리는 일만 사라질 뿐이다. MLB 야구 심판 출신으로 우울증을 겪었던 론 루치아노(1937~1995)의 말처럼 야구 심판의 스트레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판정을 내려야만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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