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낳았냐?” 양육비 미루고 ‘배짱’…수사는 중단 [취재후]
한부모 가족 10명 중 8명은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집계한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한부모 가족은 2021년 기준 80.7%에 달합니다.
양육비 소송에서 이겨도 제대로 지급해주지 않아 형사 처벌을 하려면 절차가 복잡합니다.
먼저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을 법원으로부터 받아야 하고, 감치 명령까지 받으려면 최대 2년 정도 소요됩니다. 감치 명령을 받아도 양육비 채무자를 실제로 감치하고, 형사 고소를 통해 재판에 넘기기까지도 쉽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모두 양육비를 정부가 먼저 지급하고 이후에 비양육자로부터 돌려받는 '양육비 선지급제'를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양육비 선지급제'를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시행하겠다고 정부도 발표했습니다. 양육비를 미루는 부모 대신 정부가 나서겠다는 건데, 실효성을 높이려면 좀더 면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내가 낳았냐?" 적반하장 전남편...'유치장 20일' 감치명령 집행 받고도, 경찰관 연락 회피 '수사 중지'
이혼 16년 째인 이 모 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전남편을 상대로 양육비 지급 이행 소송을 제기했고, 전남편은 매달 1천만 원씩 10회, 총 1억여 원을 이 씨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전남편은 일부만 지급한 뒤 양육비를 주지 않았습니다. 이 씨는 전남편에 대한 운전면허 정지,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 할 수 있는 제재를 다 했습니다. 그런데도 양육비가 지급되지 않자 이 씨는 감치 명령까지 받아냈습니다. 전남편은 경찰서 유치장에 20일 구금된 뒤에도 양육비을 주지 않고 버텼고, 다시 이 씨가 경찰에 전남편을 고소하면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전남편은 경찰의 연락을 받지 않았고 경찰이 찾아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씨가 전남편의 집 가스 검침, 차량 주차 등 실거주 사실을 확인해도 소용 없었습니다. 경찰 조사에도 불응했습니다. 전남편에 대한 강제 수사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지난해 7월 수사는 중지됐습니다.
전남편은 수사가 중지된 뒤 이 씨와 통화가 됐습니다. 지난해 말 통화에서는 "왜 책임을 져야 하냐. 내가 낳았냐? 양육비를 안 주면 내일 죽냐?"며 양육비를 줄 생각이 없음을 강조했습니다.
40대 김 모 씨도 양육비 6천여만 원을 받기 위해 이 씨처럼 감치 명령까지 받았고, 수사가 이뤄졌지만 결국 검찰이 전남편을 '혐의 없음' 처분했습니다. 김 씨에 따르면, 전남편에 대한 경찰 수사도 '거주지 불명'을 이유로 중지됐다가 김 씨가 이의 신청을 하면서 수사가 재개됐습니다. 전남편은 출석을 세 차례나 거부했지만 혐의 없음으로 수사가 종결됐다는 겁니다.
이 씨와 김 씨처럼 이행 명령에 감치 명령을 거쳐 형사 고소를 시도해도, 비양육자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주소지를 옮기는 등 회피하면 수사가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현재 양육비 미지급자는 '가사소송법'에 따라 감치명령을 받게 되고 소송이 민법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강제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형사 고소 전 단계 '감치 명령'도 집행률 6%에 불과
앞서 소개한 사례자들은 감치 명령을 받아냈는데요. 지난해 법원으로부터 감치명령을 받아 경찰에 접수한 사례는 모두 444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가운데 실제로 비양육자를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 등에 가두는 '감치'가 집행된 사례는 27건으로 6.1%에 불과했습니다.
각 경찰관서로부터 파악된 감치 명령 집행 건수는 한 해 20~30건대로 집행이 늘지 않았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에 대한 형사 고소를 위해 감치명령 접수는 늘고 있지만 집행은 진척이 없다보니 해마다 집행률이 낮아지는 추세였습니다.
경찰청은 KBS와 민주당 강득구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부재중 등으로 집행하지 못했거나 집행장 유효기간 경과로 법원에 서류를 반환한 경우 집행하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감치 명령 미집행 사유에 대한 분류를 요청했으나 경찰청은 "구체적인 미집행 사유는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법안들은 있었을까요?
■양육비 미지급 "아동학대로 규정·형법으로 처벌"…21대 국회 폐기 수순
21대 국회에서 여야 모두 관련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 학대로 규정하고 금지 행위로 규정(아동복지법 개정안 - 민주 윤후덕 대표 발의)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보고 징역 2년 이하·벌금 2천만 원 이하 벌금 처벌 조항 신설(아동복지법 개정안 - 국민의힘 전주혜 대표 발의) ▲양육비 미지급으로 미성년 자녀 유기·방임에 이르게 한 때 징역 5년 이하·벌금 5천만 원 이하 처벌 조항 신설(형법 개정안 - 민주 전재수 대표 발의)
그러나 별다른 논의 없이 21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양육비 선지급' 1만6천 가구 대상..."제재 강화 병행해야"
정부도 양육비 미지급 피해 가정을 구제하기 위해 '양육비 선지급제'를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시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지급 대상은 1만 6천 가구로 추산됩니다. 정부는 먼저 양육비를 지급한 뒤 비양육자로부터 돌려받겠다는 입장인데요. 선지급제 시행시 필요한 재원 규모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 2021년, 양육비 선지급에 연평균 920억 5천9백만 원이 필요할 것으로 분석한 바 있습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해 형사 고소까지 진행했으나 '수사 중지'로 좌절한 이 씨는 선지급제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전남편에게 청구하겠다고 하는데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못받은 돈을 한꺼번에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얼마를 어떻게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양육비 채무자에 대한 제재 강화를 병행해야 정부의 양육비 선지급에 따르는 재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는 "최근에는 이행 명령만 받아도 출국금지 등 제재 조치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이 통과됐지만,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하는 강도로 수위를 좀 더 높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감치 명령 집행률이 매우 낮은 만큼, 감치 명령 없이도 바로 형사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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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 기자 (paz@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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