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들 용기' 교황 발언 파문에…진화 나선 교황청

이도연 2024. 3. 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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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2인자 "백기는 항복 아닌 '적대행위 중단' 의미" 해명
"협상을 위한 전제조건은 침략자들의 공격 중단" 강조도
프란치스코 교황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일반적으로 항복을 연상케 하는 '백기'라는 단어로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을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에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자 교황청이 수습에 나섰다.

교황청 국무원장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은 12일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교황이 언급한 '백기'가 "적대행위의 중단을 의미한다"고 해명했다.

파롤린 추기경은 이날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와의 인터뷰를 통해 교황이 말한 '백기'는 적대행위의 중단을 뜻하는 것으로, 교황은 당시 발언에서 영속적인 평화로 이어질 외교적 해결을 위한 조건을 제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파롤린 추기경은 러시아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채 "침략을 끝내는 것이 협상을 통한 해법의 전제조건"이라며 "침략자들이 먼저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교황은 지난 9일 공개된 스위스 공영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상황이 악화하기 전 협상할 용기가 있어야 한다며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말해 전황이 불리해진 우크라이나에 러시아와 협상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청 뉴스 포털을 통해서도 우크라이나에서의 외교적 해결과 정의롭고 영속적인 평화의 조건 조성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을 위한 것이라며 "첫 번째 조건은 (러시아가) 침략을 끝내는 것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황의 '백기' 발언은 해당 용어를 쓴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으며,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시에도 "협상은 절대 항복이 아니다"는 표현을 썼다고 덧붙였다.

교황청 2인자로 꼽히는 파롤린 추기경의 이런 해명은 교황의 '백기' 발언에 대한 역풍을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교황의 해당 발언 직후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천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이 발언과 관련해 자국 주재 교황대사를 불러 들여 항의했다. 우크라이나 외무부는 "백기를 드는 용기를 내 침략자와 협상해야 할 필요성을 언급한 교황의 발언에 실망했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바티칸 소식통조차 AFP에 교황이 "항복과 동의어인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이같은 발언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일 이전에도 우크라전과 관련해 종종 혼란스러운 화법을 쓴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나 대통령이나 러시아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을 자제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교황은 전쟁 발발 두어 달 뒤인 2022년 5월 이탈리아 일간 라스탐파에 "러시아 문 앞에서 나토가 짖은 게 어쩌면 푸틴의 행동을 촉발했을 수 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유발한 것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라는 취지로 발언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또 같은 해 11월에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로 쳐들어온 군인 중 "가장 잔인한 건 러시아의 전통에 속하지 않은 체첸인, 부랴트인 등등이다. 물론 침략자가 러시아 정부라는 건 분명하다"라며 잔인함의 주체로 소수민족을 거론해 비판을 받았다.

또 작년 8월에는 화상 연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인 러시아 청년 신자들에게 "여러분의 유산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위대한 러시아의 후예"라고 말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초대 황제였던 표트르 대제와 마지막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칭송하는 듯한 발언을 해 서방 진영의 반발을 부르기도 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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