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세상 뜬 여자축구 '열혈 서포터'…그를 기억하는 현대제철

이의진 2024. 3. 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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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김혜리 "정말 감사했다…하늘에서 편안하시도록 잘하겠다"
인천 현대제철의 주장 김혜리 [한국여자축구연맹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여자 실업축구 WK리그 인천 현대제철의 주장 김혜리는 고(故) 강석경 씨를 기억한다. 강 씨는 2년 전 투병 끝에 세상을 떴다. 39세의 이른 나이였다.

'디벨론 WK리그 2024' 개막 미디어데이가 열린 지난 12일이 고인의 기일이었다. 그래서 김혜리는 현장에서 강 씨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그러나 각 팀 감독에 리그 운영과 관련된 질문이 쏠렸다. 김혜리는 좀처럼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행사 직후 연합뉴스와 만난 김혜리는 "그분의 존재가 너무 감사했다"며 못다 한 이야기를 꺼냈다.

강 씨는 현대제철의 '열혈 서포터'였다. WK리그 출범 전 2000년대 초반부터 현대제철을 따라다녔다. 지역 연고제가 정착되기 전에는 먼 지방까지 현대제철이 싸우는 현장을 찾았다.

2018년 갑작스럽게 투병하기 전까지 15년이 넘는 세월을 현대제철 응원에 바쳤다.

강 씨는 현대제철에서 뛰었던 이미연 문경상무 감독을 좋아해 여자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 그는 '나 홀로 응원'으로 여자축구계에서 유명해졌다.

관중이 거의 없는 WK리그 경기장을 찾은 강 씨는 준비해온 북을 치고 노래를 부르며 썰렁한 장내 분위기를 홀로 끌어올리려 애썼다.

2014년 현대제철 유니폼을 입은 김혜리는 "그 누구보다 든든했던 팬이었다"며 "정말 감사하는 마음뿐이다. 그 마음은 내가 현대제철을 떠난다고 해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돌아봤다.

강 씨가 이목을 끄는 이런 응원방식을 채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는 강 씨와 함께 '여축강도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WK리그 초창기 응원을 주도했던 임성윤 씨가 고안한 방법이다.

인천 현대제철의 '열혈 서포터'였던 강석경 씨의 생전 모습. [임성윤 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충북 스포츠토토(현 세종 스포츠토토)를 열렬히 응원했던 임 씨는 "앉아서 박수치는 일 말고 여자축구도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자는 취지였다"고 돌아봤다.

임 씨는 "이런 응원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고, 중계하시는 분들도 우리를 카메라로 잡았다. 이런 식으로라도 여자축구의 존재가 노출되면 관중이 조금이라도 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임 씨가 기억하는 강 씨는 수줍음이 많았다. 처음에는 쭈뼛쭈뼛 목소리도 잘 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조한 인기 속 응원 동지들이 하나둘 떠날 때도 강 씨는 계속 현장을 지켰다.

'여자축구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자'는 거창한 취지로 '강도단'이라는 다소 과격한 이름을 붙인 강 씨 일동은 팟캐스트를 제작하는 등 리그 홍보에도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다.

강 씨는 리그 발전이 더딜 당시의 어려움을 몸소 겪은 인물이기도 했다.

임 씨는 "이전에는 WK리그가 경품 추천 등을 통해 관중을 모으려 했다. 연고제 이전 중립 경기장이었던 보은종합운동장에서는 보은군에서 면 단위로 많이 오셨는데 동네잔치처럼 축구장을 이용하시더라"라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우리가 아무리 응원해도 같이 좋아하고 기뻐할 사람이 없었다. 골이 들어갔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었고, 함께 손뼉 칠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WK리그는 느리지만 발전 중이다. 2015년 지역 연고제가 본격 도입됐다. '축구에 관심 없는 관중이 온다'는 불평을 자아낸 무료 관중 정책도 조금씩 바뀔 기미가 보인다.

수원FC가 2022년부터 여자축구 발전과 관람 환경 개선을 명분으로 유료 관중을 받고 있다.

수원FC의 박길영 감독도 이날 "무료 관중일 때는 팬들이 도중에 가버리더라. 유료 관중일 때는 팬들과 경기하는 느낌"이라며 "유료 관중 정책이 확산해야 모두 책임감을 갖고 더 멋진 경기를 하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현대제철, 통합 11연패 우승 (인천=연합뉴스) 임순석 기자 = 25일 오후 인천 남동경기장에서 열린 여자축구 2023 WK리그 챔피언결정전 2차전 인천 현대제철과 수원FC 경기, 6-2로 승리해 11년 연속 리그 우승을 거둔 인천 현대제철 선수들이 트로피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2023.11.25 soonseok02@yna.co.kr

현대제철 선수들은 올 시즌 우승 시 어떻게 강 씨를 기릴지도 논의했다고 한다.

김혜리는 "앞으로 매년 우승할 때마다 티셔츠나 모자 등을 준비해서 (강석경 씨를) 챙겨주면 어떨까 한다"며 "그분을 아는 선수들이 많이 나갔다. 하지만 아는 선수들은 최근까지도 감사한 마음을 서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늘에 계시는데 편안하게 지켜볼 수 있도록 우리가 축구를 더 잘해야 하는 게 첫 번째"라고 덧붙였다.

2013년부터 쭉 우승 트로피를 챙긴 현대제철이 2024시즌에도 우승하면 12연패를 이룬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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