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알리, 공정위 움직이자 '움찔'…간담회 취소
정부, 해외 온라인 플랫폼 소비자 보호 대책 발표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체인 알리익스프레스가 기자간담회를 하루 앞두고 돌연 취소했습니다. 기업이 미디어 간담회를 '하루 앞두고' 취소하는 것은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고선 드문 일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간담회는 원래 지난 12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는 간담회에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소개하겠다며 기자들을 초청했습니다. "올해 국내 기업들과 함께 상생을 도모하며 협력해 나갈 첫 걸음을 함께 해달라"는 당부도 있었습니다. 자사 고객 서비스 관련 내용도 공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던 알리익스프레스는 왜 간담회를 돌연 취소한 것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알리익스프레스 측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취소하게 됐다"고만 밝혔습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가 해외 온라인 플랫폼 제재안을 내놓으면서 알리익스프레스가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앞서 공정위는 알리익스프레스의 한국 법인인 알리코리아의 소비자 보호 의무 위반 조사를 착수한 상태였습니다.
사용자 몰리는 중국 이커머스
최근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은 국내 유통업계에 위협적인 존재로 떠올랐습니다. 낮은 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을 유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판매자를 대상으로 입점, 판매 수수료까지 면제해주고 있습니다. 제조사 입장으로선 이용자가 많은 플랫폼에 수수료 없이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이렇다보니 이젠 대기업들까지 속속 알리익스프레스에 입점하고 있습니다.
중국 이커머스들의 공격적인 행보는 직구시장 확대로 이어졌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비자들의 해외 직접 구매액은 6조7567억원으로 전년 대비 26.9% 증가했습니다. 그중 중국 직접 구매액은 3조2873억원으로 전년 대비 두 배(121%)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렇다보니 중국 이커머스 이용자는 늘고 국내 이커머스 이용자는 줄어들었습니다. 실제 앱 시장 분석 업체 와이즈앱·리테일·굿즈가 발표한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용한 종합몰 앱'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알리익스프레스 앱 사용자는 818만명을 기록했습니다. 1위인 쿠팡(3010만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입니다. 테무는 지난해 7월 한국에 출시했음에도 사용자수 581만명을 기록하며 4위를 차지했습니다.
반면 국내 주요 이커머스 업체들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이용자가 줄었습니다. 각각 11번가 736만명(-208만명), G마켓 553만명(-102만명), 티몬 362만명(-61만명), 위메프 320만명(-116만명)입니다.
정부, 대응 나섰다
중국 이커머스 이용자가 많아진 만큼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소비자 불만과 분쟁건수가 늘었습니다. 가품 논란, 복잡한 환불절차 등의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국내 판매자들에 대한 역차별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국내 업체들은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선 안전성을 확인하는 KC인증 마크를 취득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는 비용이 드는데요. 반면 중국 현지 판매자는 KC인증과 유해성 물질 검사를 따로 받지 않아도 판매가 가능합니다.
국내 이커머스를 잠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소비자 피해가 커지자 결국 정부가 나섰습니다. 정부는 13일 '해외 온라인 플랫폼 관련 소비자 보호 종합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공정위는 해외 온라인 플랫폼의 소비자 보호 의무 이행 여부 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키로 했습니다. 조사 후 법 위반 사항이 있다면 엄정 대응하겠다는 겁니다.
알리익스프레스의 경우 이미 실태조사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공정위는 올 상반기 국내외 플랫폼 대상으로 소비자 보호 의무 이행 여부 등 점검위한 서면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향후 제도 개선사항을 도출할 예정입니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해외 사업자에게 '국내 대리인' 지정을 의무화하도록 전자상거래법 개정도 추진합니다. 국내 대리인은 조사 대상이 됩니다. 현재 국내에 주소·영업소가 없는 해외 사업자의 경우 소비자가 불만이 있거나 피해를 입더라도 해결하기 어려웠던 점을 보완하는 조치입니다.
소비자 피해 우려가 큰 4개 주요항목(위해 식·의약품, 가품, 청소년 유해매체물, 개인정보 유출)에 대해서는 부처간 공동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위해 식·의약품 관리를 강화합니다. 특허청과 관세청은 가품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외직구의 통관단계에서 가품 적발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여성가족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청소년 유해매체물 차단을 맡습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이 성인용품 등 판매 시 나이·본인 확인 여부 등 청소년 보호조치를 이행했는지에 대한 점검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개인정보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도 시행합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주요 해외 직구 사업자의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해외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스마트폰 앱 접근 권한에 대해 이용자에게 고지했는지 등을 점검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구제에도 나섭니다. 다수 발생한 소비자 불만 및 분쟁은 해외 온라인 플랫폼과 소비자원 간 핫라인을 구축해 대응한다는 겁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 소비자 불만 관련 전담창구도 확대 운영합니다. 해외 플랫폼과 자율협약 체결도 상반기 중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공정위와 협약을 체결한 해외 플랫폼 사업자는 자발적으로 위해물품 모니터링과 유통 차단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정부의 이런 조치는 알리익스프레스의 사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알리익스프레스도 정부의 조치에 대응해야할 겁니다. 이번 기자 간담회가 정부의 대책 발표 하루 전에 돌연 취소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1년 전 알리익스프레스가 기자간담회를 열 때만 해도 큰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미 이커머스 시장의 구도가 잡힌 터라 큰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 시장에 매섭게 침투한 지금, 이제는 정부까지 팔을 걷어붙이게 됐습니다. 이는 그만큼 알리엑스프레스 등 중국 이커머스 업체들의 국내 침투가 빠르고 깊게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만들어진 데에는 '저렴한 가격'과 '수수료 면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판매자·소비자의 수요가 플랫폼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딱 들어맞은 결과라는 겁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중국 이커머스의 돌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김지우 (zuzu@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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