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만성’의 태극마크 주인공 주민규 “막내처럼 머리박고 뛸게요”
세상은 일찍 성공하는 신동을 주목하지만, 대기만성한 이들의 끝없는 노력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한국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33세 333일)에 축구대표팀에 승선한 골잡이 주민규(34·울산)는 명백히 후자에 가까운 선수다.
주민규는 지난 12일 울산문수구장에서 열린 전북 현대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8강 2차전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취재진과 만나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날이 왔다. 그 결실(태극마크)에 굉장히 기쁘고, 나 자신이 뿌듯하다”고 활짝 웃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
주민규는 이날 관중석에 걸린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는 문구의 걸개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의 인생이 녹아 있었다.
주민규가 지금은 사라진 드래프트에 뛰어들었던 2012년부터 쉬운 길은 없었다. 자신을 지명하는 구단이 하나 없었고, 이듬해 2부리그인 K리그2 고양(해체)에 번외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는 “대학 시절엔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 착각했다”고 떠올렸다.
주민규가 세상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2015년 K리그2 창단팀 서울 이랜드FC에 입단한 것이 계기가 됐다. 미드필더였던 주민규는 그해 공격수로 변신에 성공했고, 23골이나 터뜨렸다. 이후에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상과의 지독한 투쟁이 기다렸다.
2부에서만 통한다는 꼬리표를 떼는데 20대를 보내고 나니 국내용이라는 편견이 기다리고 있었다. 주민규는 2021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생애 첫 득점왕(22골)에 등극한 이래 K리그1 최다골(2022년 17골·2023년 17골)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규는 태극마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전성기를 누릴 때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던 파울루 벤투와 위르겐 클린스만 모두 그를 외면했다.
주민규는 “사실 선수인 나는 이런 일이 워낙 많았기에 견딜 수 있었지만 가족은 달랐다”면서 “누구나 부모는 자기 자식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아내는 남편이 최고라 말한다. 그게 미안해 포기하지 않고 하루 하루를 버티니 이런 좋은 날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33세 333일이라는 숫자에 아내는 ‘최고령 오빠’라고 장난을 친다. 어쨌든 1등이니 기분 좋게 생각하려고 한다. 더 젊은 나이에 들어갔다면 좋았겠지만 이 나이에도 뽑아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날 인정해준 황선홍 감독에 보답하고파 “막내처럼 머리박고 뛸게요”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인 황선홍 감독이 주민규를 부르지 않았다면 축구화를 벗을 때까지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을지 모른다. 주민규를 더욱 기쁘게 만든 것은 대표팀 발탁 소식과 함께 들려온 “지난 3년간 K리그1에서 50골 이상 넣은 선수(2021년 22골·2022년 17골·2023년 17골)는 주민규가 유일하다. 더는 설명이 필요 없다”는 황 감독의 기자회견 발언이었다.
주민규는 “‘어떻게 하면 대표팀에 들어갈 수 있을까’라며 실망하던 날 인정해주신 것이라 기뻤다. 포기 하지 않으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축구 선수들도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주민규는 벌써부터 오는 18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시작하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나이만 따진다면 베테랑인 그가 대표팀에선 출전 기록이 전무한 새내기다. 자신을 인정해준 황 감독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뛰겠다는 마음 뿐이다. 주민규는 “대표팀에선 열심히 뛰는 간절함이 전부”라면서 “막내라는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박고 진짜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울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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