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미 대선과 인플레이션 감축법 폐지 논란
(서울=뉴스1) = 미국 대선이 본격화하면서 2022년 논란 가운데 민주당의 주도로 통과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이하 IRA)이 다시 쟁점화되었다. IRA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한 대규모의 지원책을 담고 있는데,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자신이 재선된다면 IRA를 폐지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하였다. 언론에 따르면 IRA의 폐지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취임 즉시 추진할 최우선 과제의 하나다.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라는 점, 미국이 현재 수준의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한 불안 요소이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은 탄소 가격제 등 추가적인 제도를 도입해야만 그나마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가까워질 수 있다. 범위를 국내로 좁힌다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IRA 폐지 공약은 이를 계기로 미국에 투자를 감행한 배터리, 태양광 등 관련 분야의 우리나라 기업에 상당한 불안 요소로 작용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IRA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위해 대규모의 보조금과 세액공제 혜택 등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미국 내에 생산 시설을 확충하여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고자 한다. 이 가운데 후자는 의심의 여지 없이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안이다. 그러나 전자와 관련해서는 양당 간 견해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 공화당은 화석연료 관련 산업에 우호적이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하였을 만큼 기후변화 관련 대응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미국 국내 정치 역학도 영향을 미치긴 하였으나 공화당 의원 중 단 1명도 IRA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지 않았다.
다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올해 11월 재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실제로 폐지되기는 다소 어려울 전망이다. 법의 폐지를 위해서는 법의 제정과 마찬가지로 이를 위한 법안이 상원과 하원을 모두 통과해야 한다. 미 의회도 올해 11월 선거를 통해 재구성되는데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 가운데 하나 이상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한다면 민주당의 기조를 볼 때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폐지되기는 매우 어렵다. 만일 공화당이 양원을 모두 장악한다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지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커지지만 과거 공화당의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변수가 남아 있다.
많은 전문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지 가능성을 낮게 보는 가장 큰 이유는 IRA로 인해 공화당 우세 지역이 많은 경제적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IRA로 인한 향후 약 10년간 민간의 투자 규모는 이미 초기의 예측보다 상당히 커질 것으로 추산될 만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러한 천문학적인 투자의 절반 이상이 공화당 우세 지역으로 흐르고 있다. 또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투자는 그동안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던 일부 지역에 벌써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에 찬성하는 정치인과 언론은 IRA에 반대했던 공화당 의원들도 실제로는 자신의 지역구에 투자가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을 반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정치는 어느 국가에서나 매우 복잡하고 예측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폐지 가능성에 대해서도 단언하기는 어렵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IRA의 폐지와 관련해서는 대통령 선거의 결과보다도 오히려 의회 선거의 결과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지역구 이해관계를 고려한다면 공화당이 양원에서 모두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하더라도 실제로 법이 완전히 폐지되기는 쉽지 않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행정부의 권한을 통해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효과를 낮출 수 있다. 이는 의회에서 법을 제정하더라도 실제 시행과 관련한 세부 규칙은 행정부에서 정하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관련해서는 특히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 이러한 요인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동 분야에서의 지나친 자국 우선주의 성격으로 인해 우리나라, 유럽연합 등 우방국과의 갈등이 커지자 미 행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세부 규정을 통해 이들의 불만을 일부 잠재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일부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상업용 리스 차량에 대해 북미 최종 조립 요건을 면제하여 우리나라 등 동맹국의 대(對)미 전기차 수출이 계속해서 중가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배터리 부품 등과 관련한 세부 규정에서도 우리나라 업계와 정부가 요구한 내용을 일정 수준 반영하였다. 이를 뒤집어 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는 경우 행정부의 권한만으로도 친환경 에너지에 불리한 방향으로 세부 규칙을 정할 수 있다.
이 외에 IRA와 관계없는 다른 제도를 통해서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전기차의 경우 내연기관차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차량의 연료 효율 기준 완화 등이 주요한 수단으로 꼽힌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면 올해 11월 미 대선은 미국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 또는 녹색전환 정책과 관련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느 후보가 당선되는지에 따라 미국의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탄력을 받을 수도 있고 장애물을 만날 수도 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고 미국 내에도 관련 투자가 활발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이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의 불확실성과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미국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이고 미국이 거대한 단일시장이라는 점에서 이는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 대응과 우리나라 관련 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올해 11월 미 대선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이다.
/박성준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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