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마지막? 김연경 은퇴 결정 임박 "노코멘트 하겠다" 의미심장
[스포티비뉴스=수원, 윤욱재 기자] 어쩌면 진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배구여제' 김연경(36)은 지금도 '은퇴'라는 두 글자를 두고 고심하고 있다.
김연경은 여전히 흥국생명의 주포이자 V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다. 김연경의 진가가 다시 한번 드러난 것은 바로 12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3-2024 V리그 여자부 현대건설과의 6라운드 경기. 김연경은 이 경기에서 16득점으로 활약하면서 공격과 수비를 가리지 않고 결정적인 순간에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김연경은 2세트에서 모마의 백어택을 저지하는 천금 같은 블로킹을 성공했고 이는 흥국생명이 21-20으로 역전하는 귀중한 득점이었다. 이어 김연경이 시간차 공격을 시도했지만 양효진의 블로킹에 막히면서 21-23으로 리드를 허용, 위기를 맞았는데 그럼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김연경은 침착하게 득점포를 가동했고 흥국생명은 23-24로 따라갈 수 있었다. 이어 김수지의 블로킹이 적중하면서 24-24 듀스를 만드는 기적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결국 흥국생명은 윌로우의 한방이 터지면서 27-25로 2세트를 승리하며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 나갔다. 분위기를 탄 흥국생명은 3세트도 어렵지 않게 잡고 일찌감치 경기를 마무리했다.
결과는 흥국생명의 3-0 완승. 만약 이날 흥국생명이 패했다면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는데 이를 스스로 저지했다. 경기 전 강성형 현대건설 감독은 "홈에서 찾아온 기회를 잡고 싶다. 김연경을 잘 마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지만 이는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로써 흥국생명은 1위 현대건설을 승점 1점차로 따라 붙었다. 그러나 여전히 흥국생명은 불리한 입장이다. 흥국생명이 오는 15일 GS칼텍스전을 승리하더라도 현대건설이 16일 페퍼저축은행전을 이기면 정규리그 1위로 올라설 수 없기 때문이다. 양팀에게는 이제 1경기씩 남은 상태.
그래서 흥국생명은 지난 8일 페퍼저축은행에 1-3으로 패한 것이 더욱 아쉽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이다. 이제는 페퍼저축은행을 '응원'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김연경은 "지난 경기를 후회해봐야 소용 없다.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처음으로 지면서 다들 충격도 많이 받았고 분위기도 정말 좋지 않았는데 다들 현대건설과의 경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경기를 지면 현대건설이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모습 보이고 싶었다. 또 포스트시즌에서 만날 상대라 중요했다"라면서 "사실 분위기를 다시 추스르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페퍼저축은행에 진 다음날 훈련하면서도 분위기가 많이 좋지 않았는데 감독님이 '열심히 하자'고 말씀하셨다"라고 말했다.
이날 수원실내체육관은 양팀의 명승부를 보기 위해 3836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찼다. 김연경은 "매진이 된 것으로 알고 있고 우리 팬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많은 응원을 보내주셨는데 결과로 보여드려서 기분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이제는 '정신력' 싸움이다. 누구나 다 지치고 힘든 시기이다. "사실 힘들기는 하다. 마지막에 오니까 지치기는 하는데 이제 그것은 이유가 될 수 없다"라고 각오를 다진 김연경.
결국 외국인선수 윌로우와 아시아쿼터 레이나가 얼마나 김연경과 조화를 이루느냐가 관건이다. "윌로우와 레이나가 동시에 잘 하면 좋겠지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라는 김연경은 "현대건설을 상대로도 어려운 경기가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김수지가 듀스를 만드는 블로킹을 해내는 등 각자 모든 선수들이 자기 위치에서 잘 해줘서 이길 수 있었다. 포스트시즌에 가면 긴장감 계속해서 타이트한 경기 이뤄지기 때문에 어떻게 이겨낼지 서로 이야기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연경을 비롯한 흥국생명 선수들은 우선 GS칼텍스전에 집중하고 현대건설-페퍼저축은행전 결과를 유심히 지켜볼 것이다. "우리가 먼저 경기를 한다. 우리가 잘 하는 것이 중요하고 승점 3점을 가져와야 더 많은 가능성이 생기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김연경은 그러면서도 "페퍼저축은행 선수들이 최근 컨디션이 좋더라"고 웃으며 페퍼저축은행의 선전을 기원했다. 마르첼로 아본단자 흥국생명 감독도 "과일 바구니 선물이라도 보내고 싶다"라고 말할 정도로 '대역전극'을 바라고 있다.
이날 김연경은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에서도 빛났다. 특히 디그 15개와 리시브 8개를 추가하면서 통산 수비 5000개를 돌파(통산 5009개)하는 기염을 토했다. 정작 당사자는 "배구를 오래했다는 증거인 것 같다. 기록을 달성한지는 몰랐다. 대부분 선수들이 기록을 잘 모를 것이다"라고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김연경의 맹활약에 정규리그 1위 확정을 매듭 짓지 못한 강성형 감독은 "1세트부터 결정적인 판단에서 오류가 생겼다. (양)효진이가 목 상태가 좋지 않았다"라면서 "한번 더 기회가 있으니까 기회를 잡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16일 페퍼저축은행과의 경기를 이기면 자력으로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할 수 있다.
아본단자 감독의 반응도 재밌다. "사실 지난 경기가 생각이 나서 기분이 엄청 좋지 만은 않다"라고 머리를 감싸쥔 아본단자 감독은 "남은 경기를 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V리그에서 끝까지 정규리그 1위를 두고 싸운 적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다. 끝까지 잘 싸워보겠다"라고 말했다.
아마 흥국생명 선수들이 GS칼텍스전을 이기면 다같이 모여 현대건설-페퍼저축은행전의 중계를 지켜보지 않을까. 이제는 페퍼저축은행을 응원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본단자 감독은 "페퍼저축은행에게 과일 바구니라도 보내야할지 모르겠다"라는 말로 취재진을 폭소케했다. 어쩌면 그만큼 정규리그 1위가 간절하다는 표현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벌써 V리그도 정규리그 막바지로 향하고 있다. 곧 '봄배구'의 계절이 열린다. V리그의 2023-2024시즌이 종착역으로 향할수록 김연경의 거취에 대한 궁금증도 점점 커지고 있다. 김연경은 은퇴 결정과 관련한 질문에 "고민은 하고 있다. 아직은 노코멘트하겠다"라고 답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답변이었다.
사실 지난 2022-2023시즌에도 김연경의 은퇴 이슈가 불거지면서 어떤 결정을 내릴지 이목이 집중됐다. 김연경은 흥국생명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면서 팀을 챔피언결정전 무대로 올려놨지만 도로공사에 리버스 스윕 패배를 당하며 우승을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결국 김연경은 은퇴를 미루고 흥국생명과 1년 FA 계약을 맺으면서 다시 한번 정상을 노크하기로 결정했다. 여전히 흥국생명은 정규리그 1위로 올라설 수 있는 불씨가 남아있고 봄배구에서도 정상을 바라볼 기회도 갖고 있다. 과연 지금 김연경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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