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네타냐후』 조슈아 코언 “믿음이나 신념 없이 늙어간다는 게 오히려 기쁘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저 사람을 만난 적 있어요!” 블룸이 주름이 가득 잡힌 손으로 텔레비전 화면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침 이때 CNN으로 맞춰져 있던 텔레비전 화면에 강경한 인상의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뉴욕 위쪽의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위치한 저명한 문학평론가 헤럴드 블룸(1930~2019)의 집에서 텔레비전을 켜놓은 채 편안하게 나누던 대화에 갑자기 미묘한 열기가 더해지던 순간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났느냐고 젊은 소설가 조슈아 코언은 블룸에게 물었다. “여기서요!” 블룸은 조금 높아진 톤으로 늘그막에 친구가 된 그에게 말했다. “아마 그가 열 살 때쯤이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오래 전 경험과 기억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것은 이야기라기보다 비화라거나, 짧은 스케치였다. 소설은 거기서부터 태어났다. 다만 먼저 자신에게 만남을 요청하며 다가온 블룸이 저 세상으로 떠난 뒤에야 쓸 수 있었다고, 코언은 회고했다.
“어려움은 항상 있습니다. 때로는 텍스트가 만들어내는 어려움이 있고, 때로는 삶이 만들어내는 어려움이 있지요. 이 작품에선 주로 후자에서 비롯된 어려움이었어요. 저는 이 작품을 팬데믹 봉쇄 기간 중에 썼습니다. 외로운 시간이었고, 아마도 그래서인지 코미디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 가족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룬 조슈아 코언의 장편소설 『네타냐후』(김승욱 옮김, 프시케의숲)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유대인 정체성을 기반으로 2007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코언은 이 책으로 2022년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수준 높은 스타일과 유희적 지성으로 가득 차 있다”는 호평을 받았다.
이 같은 문장으로 시작한 소설은 네타냐후 총리의 아버지 벤시온 네타냐후의 미국 대학 취업면접 당시 이야기를 주요한 모티브로 그와 그의 가족을 맞게 된 유대인 교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젊은 역사학자 루벤 블룸은 뉴욕주 변두리의 코빈 대학에서 스페인 종교재판을 연구해온 한 이스라엘 무명 학자 벤시온 네타냐후에 대한 채용위원회에 합류하게 된다. 1960년, 블룸은 학과에서 가장 젊은 교수여서 면접을 보려는 벤시온 네타냐후 가족을 손님으로 맞는다.
“내가 밖으로 나가는 순간 자동차 뒷문이 마침 열리면서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우르르 쏟아졌다. 의상을 완전히 갖춰 입고 나팔을 불며 접시 받기를 하는 광대들은 아니었지만 비슷했다. 무스탕 옷을 입은 아이들이 한 명, 두 명, 세 명⋯ 그동안 그들보다 덩치가 큰 어른 두 명이 인도 쪽 앞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반대편 문은 어딘가에 걸려서 열리지 않았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 두 어른이 완전히 똑같아 보여서 구분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입은 것보다 크기만 클 뿐 똑같이 생긴 무스탕 외투로 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막대 모양의 단추가 달린 똑같은 털외투 다섯 벌.”(178쪽)
블룸은 이렇게 나타난 벤시온 가족을 집에서 재워주고 인터뷰와 견본 강의 등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일련의 사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면접에서 신앙이 아닌 사실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벤시온의 대답.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적대관계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아주 다양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이 결코 끝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사이의 적대관계가 있습니다. 플라톤은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창조된 것이므로 파괴될 수도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믿음과 이 동그란 탁자처럼 영원히 언제나 되풀이된다는 믿음 사이의 적대관계를 언급하면서 이만 말을 마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230쪽)
막바지에 갈수록 황당한 소동극으로 치달아가는 소설은 미국 학계의 이면에 숨겨진 위선과 어리숙함도 드러내고,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예리한 풍자와 지적인 유머도 보여준다. 특히 무엇보다도 네타냐후 총리의 성장 배경을 이해함으로써 그의 시오니즘적 행보와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단초를 볼 수도. 참고로 네타냐후 가족은 「걸리버 여행기」 속 야만족, ‘야후’에 비유된다. 소설의 원제목은 ‘The Netanyahus(네타냐후 가족)’이고, 부제는 ‘매우 유명한 가족의 역사에서 사소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
―실제로 이 정도의 소동이 있었던 것인가.
“저는 1959~1960년을 살지 않았다! 제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책에 있는 모든 것은 제가 소파에 속옷 차림으로 앉아 있는 동안 실제 저의 상상 속에서 정말로 일어난 사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아버지 벤시온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소설과 실제 인물간 공통점과 차이점은.
“벤시온 네타냐후는 유럽 중세사, 그 중에서도 특히 종교재판을 연구하는 역사학자였다. 또한 완고한 사람이었고,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며, 자국에서 거부당한 민족주의자였다. 이것이 그가 미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나서게 된 이유였다. 그의 정치적 견해와 성격은 당시 이스라엘에선 지나치게 극단적인 것으로 판명됐다. 이러한 거부로 인해 벤시온은 많은 원한과 깊은 분개를 품었고, 자녀들을 자신의 복수를 위해 길렀다.”
미국 여러 학교를 전전한 벤시온 네타냐후는 코넬대에서 중세사 교수가 됐다. 첫째 아들 조나단이 죽은 뒤 학교에 휴가를 내고 아내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뒤, 20년간 『15세기 스페인 종교재판의 기원』을 집필해 1995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2000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둘째 아들 베냐민이 총리가 되는 것을 지켜봤다.
―소설 내용과 현재 네타냐후 총리와의 연계성을 어느 정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 그는 열 살이었다. 쿠키를 먹고, 가구를 부수고, 동생의 고추를 튕긴다. 그런 행동들과 그의 15년 이상의 이스라엘 통치 정책을 연결하는 것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작품은 아무래도 총리가 아닌 아버지 벤시온을 그리고 있어서 네타냐후 총리의 모습을 많이 볼 수는 없다. 작품 속에서 볼 수 있는 네타냐후 총리의 모습은 열 살짜리 개구쟁이 소년의 모습. 그런데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조나단과 베냐민은 이디스와 내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하이드어 베드 맞은편의 섬세한 세이커 의자에 앉았다. 의자를 찾지 못한 이도는 조나단의 무릎 위에 올라가려다가 밀려나자 베냐민의 무릎으로 올라가려 했다. 베냐민 역시 그를 밀어냈는데, 그 바람에 의자와 나무 뼈대와 바구니처럼 짠 상판이 걱정스럽게 흔들렸다.”(183쪽) 베냐민의 난동은 이어진다. “이디스는 눈을 꾹 감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찰라가 가방 안을 뒤져 둘둘 만 화장지를 찾아내서 이도의 몸을 닦아주는 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벤, 존⋯ 의자 바꿀래?’ 하지만 베냐민은 동생의 잿빛 맨 몸 위로 몸을 기울여 아이의 고추를 손으로 튕기고 있었다. 칠라가 아이의 손을 찰싹 때리자 이도가 울부짖었다. ‘초코칩 똥 쿠키.’ 베냐민이 기저귀를 가리키며 말했다. ‘초코칩 브라우니 퍼지 똥 쿠키.’”(184쪽)
―「감사의 말」에 담겨 있는 주디의 답장은 실제 답장인가, 아니면 픽션의 일부인가.
“실제 응답이 그렇게 잘 작성되었으리라 생각하는지?”(픽션의 일부라는 의미다.)
메인랜드 지역 고등학교로 전학하기 전, 어린 조슈아 코언은 트로키(Trocki) 히브리어 아카데미에서 히브리어와 탈무드를 배웠다. 독일어와 히브리어를 모두 읽을 수 있었고, 나중에 두 언어로 된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2001년 맨하튼 음악학교(Manhattan School of Music)에서 작곡 학위를 취득한 뒤 곧바로 유럽으로 떠났다. 2006년까지 동유럽 여러 도시에 거주하면서 저널리스트로 일했다. 2006년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컬럼비아대 예술대학에서 짧은 소설 과정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에 비해 다양한 곳에서 많은 경험을 했고 끊임없이 글을 써왔다. 소설가 조슈아 코언의 원점이었다.
“저는 항상 글을 썼습니다. 청춘을 오로지 글쓰기에 쏟아 부었고 어떤 직업에도 적용할 수 있는 유용한 기술을 하나도 익히지 못했음을 깨달았을 때, 갑자기 작가가 되었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시장에 의해, 자본주의적 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식의 답변을 드리긴 싫지만, 사실이에요. 제가 가질 수 있었던 다른 직업은 육체노동뿐이었는데, 저는 누구보다 약해요. 그래서 작가가 됐어요. 제 약점이 곧 제 장점이랄까요.”
1980년 미국 뉴저지주 애틀랜틱시티에서 유대계 가정에서 나고 자란 조슈아 코언은 2007년 소설 『슈나이더만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위한 카덴차(Cadenza for the Schneidermann Violin Concerto)』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편소설 『타인들의 천국』, 『위츠』, 『민수기』, 『움직이는 왕들』 등을, 단편집 『새 메시지 네 개』, 논픽션 모음집 『주목』 등을 발표했다. 마타널상, 퓰리처상 등을 수상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살고 있다.
“완전한 훈련과 방임 사이,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어리석음 사이에서 균형을 갖는 것이다. 무언가를 쓰고자 한다면, 즉 사람들이 이미 알거나 느끼고 있지만 표현하지 않았거나 또는 심지어 깨닫지 못한 것을 설명하려면, 어리석어야 한다. 특정한 어리석음이다. 그것은 장황한 일이지만, 문장 중간에서, 갑자기 그렇지 않게 된다.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여러분이 다른 이들에게서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바로 그것을 스스로 불러일으킬 때, 그러니까 당신 자신이 놓친 것에 대한 인식 또는 표현이다. 그것이 제가 계속하는 이유다. 그밖에는 다른 유용한 방식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저의 지속된 무능함 때문이다.”
―하루 일상이나 취미는 어떠한지.
“매일, 하루 종일 글을 쓴다. 그리고 읽는다. 독서는 저의 취미이며 활력이다. 샤워를 매일 하려고 노력한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의 모습은 어떤지.
“미국의 유대인 공동체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생각한다. 그 중 일부는 민주당원이고, 일부는 공화당원이며, 어떤 사람은 둘 다 아니거나 둘 다이기도 하다. 저는 전통적인 유대인 가정, 전통적인 유대인 가족에서 자랐고, 전통적인 유대인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또한 적정량만큼 환각제를 경험하기도 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은, 복잡한 다양성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하마스 이스라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시간이 얼마나 있으신가요? 저는 이 문제에 관해 많은 글을 썼다―수년 간, 수십 년간, 10월 7일 이전에도. 저는 이스라엘 시민이기도 하며, 제 아내도 이스라엘인이다. 저희는 이 분쟁으로 인해 가족과 친구를 잃었고, 그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죽음을 애도한다. 저는 양국방안(the two state solution)을 지지한다. 책임 있게 말할 때는 그렇다. 나 자신이 되어 말씀드리자면, 1500만 국가 방안(15 million state solution)을 찬성한다고 하겠다. 각각의 이스라엘인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하나의 국가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모든 인간이 터무니없는 행동을 하고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현재의 학살에 대해 웃음 짓는 권리를 보존하기 위해 일하는 것뿐이다.”
“내가 하려는 말은 이거야, 루벤. 저 끔찍한 남자와 그의 끔찍한 아내를 만나고 나니 내가 뭔가 깨달음을 얻었어. 내가 이제는 그 무엇도 믿지 않는다는 깨달음.” 소설 속 루벤의 아내 이디스의 고백이야말로 이런 야만의 신념이나 악다구니에 대한 세계 시민들의 부고장인 지도. “아니, 그냥 믿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래도 상관없어. 믿음이 전혀 없는데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아무렇지도 않는 정도가 아니라 기뻐⋯ 내가 신념 없이 늙어간다는 게 기뻐⋯.”(280쪽)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조슈아 코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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