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3일!] 누더기 버리고 새옷 입었지만… 지금도 고치는 중
근로기준법은 헌법에 따라 근로조건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8년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규제된 이후 지금도 변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변화의 한 가지 방향은 새로운 산업 구조에 맞는 근로시간의 유연화다. 1997년 3월13일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와 선택적 근로시간제라는 유연화된 제도를 포함하고 있다.
이때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당시 우리나라 상황을 고려하면 획기적이었다. 근로시간은 1일 8시간, 1주일 4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다만 당사자 간 합의에 따라 1주일 60시간까지 연장 근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용자도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근로기준법 제정은 단지 종전을 앞두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일환이었다. 우리나라는 분단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북한의 선전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필요했을 뿐이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근로기준법은 사문화된 규정에 불과했다. 1960~7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 제조업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뤘다. 전후 경제 후진국이던 우리나라는 값싼 노동력을 통해 수출에서 이점을 얻었다.
한국의 급격한 경제 발전의 이면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 있었다. 명백히 규정된 근로기준법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한 부품에 불과했다. 대표적으로 피복공장이 모인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는 어린 노동자들이 닭장 같은 공간에서 먼지를 마시며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했다. 일주일 중 하루도 쉬지 않는 곳이 태반이었다.
1970년 11월13일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분신한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요구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즉 단지 법을 지켜달라는 것이었다. 봉제공장에서 재봉사로 일하던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의 존재를 알고 노동운동에 힘쓰기 시작했다. 노동운동단체 '바보회'를 결성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는 등 열악한 노동환경의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하자 그는 끝내 평화시장 입구에서 자기 몸에 불을 질렀다. 그의 죽음은 노동운동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후 1970-80년대 경제 발전과 민주화운동이 맞물리면서 노동 환경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을 이끌던 대학생들은 평화시장 등 열악한 근무 환경에 위장 취업해 노동운동에도 참여했다.
이맘때쯤 경제가 크게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생겼고 사람들은 휴일에 휴가를 떠나 돈을 쓰기 시작했다. 내수 경제 소비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근로 환경이 개선됐다. 1989년 이후 법정 근로시간은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됐다.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따뜻한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1996년 12월26일 새벽.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 의원들은 관광버스를 타고 여의도 국회로 들어가 회의를 열고 야당과의 합의 없이 11개 법안을 개회 7분 만에 통과시켰다. 이 사건은 문민정부로 불리던 김영삼 정부에서 일어난 민주주의의 후퇴로 평가받는다.
이날 통과된 법안에는 정리해고제, 파견근로제, 변형근로시간제, 노조의 정치활동 금지 등이 포함됐다. 법안 처리 과정과 내용 모두에 크게 반발한 야당과 노동계는 즉각 대규모 파업을 시작했다. 거센 반발에 해당 법안은 폐기됐다.
1997년 3월13일. 전면적 수정을 위해 1953년 제정된 기존의 근로기준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근로기준법을 제정, 공포했다. 그러나 새롭게 제정된 근로기준법에는 1996년 날치기 통과된 법안 일부가 포함됐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고용 조정, 탄력적 근로시간제도, 선택적 근로시간제도 등 명칭만 바뀐 유사한 내용이었다.
변화의 주요 골자는 정리해고제와 유연한 근로시간제도였다. 이는 경제 상황에 따라 노동자 권익을 해칠 위험이 존재했다. 그리고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은 노동자의 권리를 외면했다. 정리해고제를 근거로 IMF 당시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렇게 노동 환경은 한걸음 퇴보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은 2004년 주 5일 근무제 시행, 2018년 주 52시간 상한제 도입 등 1997년 제정된 이래 26회 개정을 거쳤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의 방향은 달랐지만 근로기준법은 계속 변해왔다. 지금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문혁 기자 moonhk@mt.co.kr
Copyright © 머니S & moneys.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소액 당첨 복권 교환했더니 '5억'… "기쁨보단 얼떨떨" - 머니S
- 회 한점 못 먹고 6만원 날린 배달원의 억울한 사연… "너무 분해" - 머니S
- 쓰러지는 건설업체… 올 들어 3월까지 6곳 부도 - 머니S
- "친구처럼 같이 살자"… '52세' 김승수♥양정아 결혼하나 - 머니S
- 우회전 차로 떡하니 막은 전기차… 알고 보니 '난감' - 머니S
- [속보] "서울의대 교수 전원 사직 결정… 환자 생명 위협" - 머니S
- ♥25세 연하와 3개월 만 결혼… 박영규, 어떻게 만났길래? - 머니S
- '올해 첫 바이오 IPO' 오상헬스케어, 코스닥 시장 출사표 - 머니S
- 6G 주도권 선점 나선 통신사들 - 머니S
- 안타까운 가정사… 정동원 父, 여친 명의로 카페 개관? - 머니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