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스탈린 29년 집권 기록 깨나…우크라전 끝이 안 보인다
경쟁자 사실상 전무…우크라전 정당성 묻는 선거
오는 15~17일(현지시각) 러시아에서 제8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결과는 정해져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71)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다.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집권을 시작한 이후 그는 실질적으로 권력을 놓지 않았던 총리 시절(2008~2012년)까지 합쳐 24년 넘게 집권 중이다. 이번 대선 당선 뒤 6년 임기를 채우면, 소련을 건국한 블라디미르 레닌 사후 ‘철권 통치자’로 군림했던 이오시프 스탈린 전 공산당 서기장의 29년 집권 기록(1924~1953년)을 깰 수 있다. 2020년 헌법 개정으로 6년 연임도 가능해 종신 집권까지 시야에 넣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답이 뻔한 선거인데도 푸틴 정부는 이번 대선에 필사적이며, 지금까지 나온 적이 없는 득표율인 8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 대선을 앞두고 현지 사정에 밝은 국내외 전문가를 통해 이번 선거의 의미와 전망을 짚어봤다.
푸틴 대통령이 사상 최고 득표율을 목표로 뛰고 있는 이유는 이번 대선이 러시아가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동원령까지 내리며 국력을 쥐어짜내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의 정당성을 묻는 선거라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전문가인 캘럼 프레이저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연구원은 최근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대선이 푸틴 정권의 ‘정당성’을 공고히 해줄 “필수적 수단”이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정권의 선거 개입 여지가 크다는 우려도 나온다. 프레이저 연구원은 이번 선거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정치사에서 가장 조작된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며 “푸틴은 높은 득표율을 통해 강력한 지지를 확보해야 하기에 모든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대파들은 이번 선거가 푸틴과 전쟁에 대한 반대의 규모를 보여줄 ‘기회’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시베리아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돌연사한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사망 직전까지 ‘투표장에 나와 푸틴에게 반대하는 한표를 행사하자’며 반정부 캠페인을 벌였다. 이젠 배우자 율리야 나발나야가 이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러시아 당국의 여론 통제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푸틴 대통령의 사상 최대 득표 전망이 현실성이 있는 이유는 높은 지지율에 있다. 비정부 여론조사 기관인 레바다 센터의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달 기준 푸틴 대통령 지지율은 86%에 달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인 2022년 1월 69%보다 17%포인트 상승했다. 러시아 상황에 밝은 한국 정부 소식통은 한겨레에 “전쟁과 정권에 반대하는 입장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주민들 상당수는 권위주의에 길들여져 있다”며 “푸틴을 러시아가 미국에 당한 모욕을 갚고 다시 강한 러시아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높은 지지율은 러시아 당국이 그를 ‘유일하게 유능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포장해온 때문이기도 하다. 프레이저 연구원은 “러시아인들이 검열된 뉴스를 접하고, 반대 의견이 있어도 추진력을 얻기 전 빠르게 진압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 결과 자체는 정확한 편이지만 “문제는 ‘누가 기꺼이 응답하느냐’”라며 “기꺼이 답하는 이들은 현 정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러시아에는 푸틴에게 맞설 만한 인물이나 세력이 없다. 대선 후보로 등록한 니콜라이 하리토노프(공산당), 블라디슬라프 다반코프(새로운사람들당), 레오니트 슬루츠키(자유민주당)의 지지율은 5% 안팎으로 구색 맞추기용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쟁 반대를 외쳤던 보리스 나데즈딘이 대선 후보 등록을 하려 했으나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추천인 서명 상당수가 무효라며 지난달 후보 등록을 막았다.
푸틴 대통령이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된 뒤 이를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공세를 더 강화하며,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신범식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소장(정치외교학부 교수)은 한겨레에 “러시아가 미국 대선 전까지 전쟁을 끝내긴 쉽지 않다고 판단하는 듯하다”며 “현재 공세의 모멘텀을 탄 상황이라 계속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하는 정책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러시아 경제도 장기전 능력을 뒷받침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는 서방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6% 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러시아 경제 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러시아 경제가 제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벌사우스(북반구의 저위도나 남반구에 위치한 아시아·아프리카·남미의 개발도상국)와의 교역 확대다.
다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러시아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심화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관세당국인 해관총서 통계에 따르면 양국 지난해 무역 총액은 전년 대비 26.3% 급증한 2401억달러(약 315조8520억원)에 달했다. 이는 사상 최대 기록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가 자신들이 비우호국으로 꼽은 나라 중 하나인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할 여지는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러시아가 “중국에 대한 예속을 피하고 전략적 독립성을 세우기 위한 협력 대상국 중 하나가 한국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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