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유리 기판 '연합군' 떴다···SKC·인텔·이비덴도 불꽃 경쟁 [biz-플러스]
두께 줄고 열에 강한 패키징 소재
인텔보다 빠른 '상용화'에 총력전
삼성그룹의 전자 계열사들이 꿈의 기판으로 일컬어지는 ‘유리 기판’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연합 전선을 구축하고 공동 연구개발(R&D)에 들어갔다. 10년 전에 유리 기판 R&D에 뛰어든 반도체 라이벌 회사 미국 인텔보다 더 빨리 상용화에 성공하겠다는 전략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패키징 분야가 최대 이슈로 떠오르면서 칩 미세화는 물론 패키징 소재의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그룹 주요 전자 계열사들과 유리 기판 공동 R&D에 착수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기판 결합에 대한 노하우, 삼성디스플레이는 유리 공정 등의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기가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등 전자 부품 계열사들과 유리 기판 연구를 함께 진행한다고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삼성전기는 1월 CES 2024에서 “2026년에 유리 기판을 본격 양산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각 회사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만큼 유망 분야인 유리 기판 연구에서도 시너지가 극대화할 것”이라며 “삼성 연합군의 유리 기판 생태계가 어떻게 갖춰질지도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유리 기판은 칩과 전자기기 사이의 연결을 최적화하는 반도체용 기판이다. 기존 플라스틱 기판에 비해 더 미세하게 회로를 새기면서 두께를 줄일 수 있는 데다 열에 강해서 대면적화와 고성능 칩 결합에 유리하다.
유리 기판 삼성 연합군의 강력한 라이벌은 미국 인텔이다. 인텔은 지난해 9월에 “2030년께 유리 기판을 양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들은 10년 전부터 미국 애리조나 공장에 10억 달러(약 1조 3000억 원)를 투자해 유리 기판 R&D 라인을 세우고 공급망을 갖췄다. 세계 반도체용 기판 1위 업체인 일본의 이비덴도 지난해 10월 유리 기판을 신사업으로 점찍고 R&D에 나서고 있다고 발표했다. 국내에서는 SK그룹 계열사 SKC가 자회사 앱솔릭스를 설립하고 AMD 등 세계 최고의 반도체 회사와 기판 양산을 타진하고 있다.
삼성이 반도체 유리 기판 연구개발(R&D)에 계열사 연합군을 구축한 것은 향후 이 제품이 인공지능(AI) 반도체 업계의 판도를 뒤집을 만한 파급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리 기판이 향후 반도체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동안 공정 중심이었던 반도체 시장의 경쟁 구도가 앞으로는 소재 분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최근 반도체 시장에서는 미세공정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최첨단 패키징이 승부처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다수의 칩이 마치 한 개의 칩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수평으로 배열하거나 여러 층으로 쌓아 성능을 끌어올리는 공정을 뜻한다. 업계에서는 이것을 이종(異種) 결합이라고 표현한다.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옆에 여러 개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올리는 패키징이 이종 결합의 대표적인 예다.
문제는 패키징에서 활용됐던 플라스틱 기판과 실리콘 인터포저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기판은 표면이 거칠어 기판 위에 얇은 회로를 새기는 작업이 힘들다. 열에 약한 특성도 있어 열을 가해 칩을 접착하다 보면 기판이 휘어버리는 현상이 발생한다. 실리콘 인터포저는 플라스틱 기판의 문제를 상쇄한다. 그러나 전(前)공정에 쓰이는 값비싼 장비들로 생산라인을 꾸려야 해 비용이 크게 상승한다는 단점이 있다.
유리 기판은 두 소재의 단점을 보완한다. 플라스틱보다 열에 강해 공정 중에 덜 휘어지고 표면이 평평해서 미세 회로를 새기기에도 상당히 수월하다. 기존 기판보다 면적을 크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지금보다 더욱 성능이 좋은 칩들을 여러 개씩 결합할 수 있는 최적의 솔루션인 셈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12일 “반도체 업계는 AI 시대에 진입하면서 더 많은 칩들을 한 개의 칩처럼 결합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유리 기판은 AI 반도체 회사들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는 차세대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기는 이러한 특성을 갖춘 유리 기판을 2026년 양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이 2030년께 칩 양산에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비하면 4년이나 빠른 시점이다. 삼성전기는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 연합군과 R&D 시너지를 극대화하면서 이 목표에 가까이 다가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은 유리 기판 연구를 위한 좋은 환경을 갖췄다. 삼성전기는 우리나라 최고의 반도체 기판 회사로 서버·PC용 고급 기판을 양산한 경험이 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선두 주자인 삼성전자는 유리 기판과 반도체 칩이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면밀히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적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업체다. 고급 패널을 만들려면 유리를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여기서 쌓은 노하우로 유리 기판 R&D에 힘을 보탤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삼성 연합전선의 지원군이 될 파트너 회사의 출현 또한 기대하고 있다. SKC의 자회사 앱솔릭스의 경우 필옵틱스·아이씨디·HB테크놀러지 등이 유력한 협력사로 거론되고 있다. 다만 최근 개발을 발표한 삼성전기의 유리 기판 생태계는 아직 윤곽이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유리 기판의 이 같은 잠재력에 전 세계 대다수의 국가들도 기술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인텔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텔은 세계적으로 명성을 지닌 유리 가공 회사 LPKF, 독일의 유리 회사 쇼트 등과 협력해 유리 기판 상용화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인텔의 본사가 있는 미국은 미국 펜스테이트주립대를 중심으로 현지 10여 개 명문대와 소재·부품·장비 회사들이 모여서 유리 기판 연구에 나서는 등 국가적으로 기술 선점을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애플 역시 최근 전자기기 속에 유리 기판을 탑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위해 다수 업체와 접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유리 기판을 선택할 경우 이 제품이 대면적 칩뿐 아니라 모바일 기기까지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재 강국으로 통하는 일본도 경쟁에 이미 가세했다. 일본 이비덴이 삼성전기와 경쟁하는 대표적 기업이다. 반도체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판 전문 업체뿐 아니라 세계 곳곳의 정보기술(IT) 기기 제조사와 반도체 회사들까지 유리 기판 전쟁에 참전할 수 있다”며 “국가적인 경쟁력 확보 경쟁이 이 시장에서 벌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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