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남의 일’일까요[취재 후]
최근에야 작은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름은 김영문.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 전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분이 돌아가신 곳이 일본이라고 합니다. 그 시절, 어떤 이유로 일본에 가서 왜 그곳에서 사망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서 아버지가 들은 이야기를 겨우겨우 더듬어 ‘10대 때 결혼도 못 한 상태에서 일본에 갔고, 곧바로 사망해 화장된 상태로 돌아왔다’라는 사실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해당 내용과 할아버지와의 나이 차 등을 계산해보니 193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 무렵 일본에 갔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가 한반도에서 강제동원을 가장 활발히 한 바로 그 시점입니다.
설마 남해에 있는 작은 섬에서까지 강제동원을 했을까 싶어 전문가에게 물어봤습니다. “일제는 심한 가뭄이 들어 구휼을 할 수 없게 되면 일본으로 강제동원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 대표적인 지역이 남해”라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강제동원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기사를 썼지만 집안에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부랴부랴 국가기록원의 강제동원자 명부를 검색해 봤습니다. 이름과 당시 주소를 입력했지만 김영문이란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해에서 돌아가신 큰할아버지 이름이 나왔습니다. 전문가에게 다시 물어보니 “그 당시에는 장남을 보낼 수 없어 동생이 장남 이름으로 대신 가기도 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당시 가족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로 신고를 안 했을 수도 있고, 누락됐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전쟁이 한창인 시기 돈 없고, 많이 배우지도 못한 섬 청년이 일본행 배를 탈 가능성이 ‘강제동원’ 외에 뭐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김영문 할아버지는 운이 좋은 편입니다. 비록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름을 기억하고 찾는 가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하겠다고 나선 사도광산에는 약 1500명의 조선인이 동원됐습니다. 그중 700명가량이 아직도 누구인지 모릅니다. 일본 정부와 광산을 운영한 전범기업 미쓰비시 등이 명부를 내놓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이야기 같을지 모릅니다. 일제는 전쟁을 시작하며 연인원 700만명을 한반도에서 강제동원했습니다. 적어도 한국인에게 강제동원 문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란 의미입니다. 이들에게 이름이라도 찾아줄 수 있게 일본 정부의 ‘상식적’인 조치를 기대합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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