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외화벌이’ 노동자 연쇄 소요사태… 北 체제 위기의 전조? [한반도 인사이트]
“中 화룡 의류업체 15곳 2500명 폭동
100여명 강제북송·일부 극형 가능성
단둥선 ‘北에 보내달라’ 수십명 결근”
교사가 자유주의 지향 정당 창당설도
통일부 장관 “급변정세, 위기이자 기회”
보수성향 정부 들어설 때마다 붕괴설
“정권 입맛 맞추기용 정보” 시각부터
“北 상황 이번엔 심상치 않다” 평가도
자유주의 정당 조직부터 재중 북한 노동자들의 집단행동까지. 북한 체제 위기와 불안을 보여주는 징후가 올해 들어 부쩍 자주 전해지고 있다. 정부의 언급도 심상치 않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통일·외교·안보 분야 4대 국책연구기관장과 가진 신년 특별좌담회에서 북한이 올해 초 민족·통일 개념을 폐기하고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전환한 것에 대해 “북한의 급격한 정책 전환은 북한 내부의 혼란과 동요를 야기할 수 있다”며 “정부는 이런 분야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급변 정세는 위기이면서도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정부는 2024년을 남북관계와 한반도 통일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열리는 한 해가 되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체제 위기 징후를 가장 적극적으로 알린 전문가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인 조한범 박사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두 차례 공개했다. 일명 ‘화룡 폭동 사건’과 ‘단둥 소요 사건’이다.
조 박사는 익명의 ‘중국 현지 휴민트’를 인용해 올해 1월 11∼15일 중국 지린성 화룡지역 내 경제합작구에 위치한 의류업체 15곳에서 2500명 노동자가 폭동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관리인 1명이 사망하고 중간 간부 3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평양에서 매우 심각하게 주시했고 중대한 정치문제로 취급하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19 탓에 한층 심각하다고 한다. 코로나19 발생 전에 중국에 외화벌이 노동자로 파견된 북한 주민들이 국경봉쇄 탓에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하면서 최대 7년까지 중국에 장기체류하게 됐고, 이로 인해 유례가 없는 신체적, 정신적 한계상황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조 박사는 “후유증으로 상당수가 향수병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고 자살 사례까지 몇건 보고됐으나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 때문에 귀국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며 “임금체불, 강제 초과근로도 계속되고 있어 사태가 확산될 뇌관이 상존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폴란드 자유노조가 공산정권에 저항하면서 폴란드 정권이 붕괴한 사례가 있다”며 “이 사태가 북한 정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시해야 한다”고 했다.
국가정보원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진위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다만, 사건 발생을 인지한 이후부터 사태 추이를 계속 점검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재중 북한 노동자들의 분규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한 확인 요청에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여건으로 말미암아 다양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어 관련 동향을 주시 중”이라고 했다.
지난 1월 탈북민 출신 연구원 최경희 대표가 이끄는 샌드연구소가 북한 내에서 한 교사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을 창당했다가 적발됐다고 공개한 것은 국내 민주화 과정에서 재야 운동을 연상시켰다. 또 미국의 대북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이 함경남도에서 급경사를 오르던 열차가 전기부족으로 전복돼 400명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고, 이 사건 또한 북한 내부 민심 동요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 안팎에선 RFA의 열차전복 사고 보도의 경우, 버스 사고가 구전 과정에서 피해 규모가 과장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자유주의 정당 창당의 경우, 확인할 순 없으나 최소한 남한 드라마 시청 등을 통해 자유로운 사회를 동경하는 경향이 확산했다는 탈북민들의 증언과 맥을 같이하는 사건으로 보는 기류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북한 내부 주민 불만에 대한 징후를 구체적으로 확인해드리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북한 당국에서 취하고 있는 일련의 주민들을 통제하는 조치들을 보면, 사회에 이완된 현상들을 강하게 통제하려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실제 존재할지라도, 과도한 의미 부여는 경계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잖다. 북한을 20여년 모니터링해온 한 소식통은 12일 “원래 북한 내 기업소들에서도 크고 작은 분규가 일어나곤 한다”고 말했다. 북한인권정보센터가 구축하고 있는 북한인권 관련 데이터베이스에는 2009년 북한 내 한 공장기업소에서 “김정일 타도하라”라는 글을 쓴 사람이 체포돼 사형이 집행됐다는 사례까지 있다. 체제 저항적 움직임은 항상 존재했고 제압돼왔다는 얘기다.
특히 재중 북한 노동자 폭동설 관련, 국정원의 이례적 인정에도 의문이 여전하다. 이 소식통은 “국내에서는 수천 명의 폭동이나 사망 사건, 강제북송 등을 국내처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중국에서는 그런 일이 있더라도 우리 측에서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아마 정황 정도 파악한 게 아니겠나”라고 했다. 그는 “해당 공장 안의 노동자들이 북한 주민인지, 북송 버스에 실린 사람들이 해당 북한 노동자가 맞는지는 확인하는 것은 물론, 그런 지역은 근처에도 접근이 안 되고 정보도 철저하게 차단된다”고 했다. 다만 “북한 당국과 주민 사이에도 노사갈등이 있어왔고, 코로나19로 노동자들의 스트레스가 쌓여 있는데 북한 당국도 당국대로 어려우니 뜯어가는 것이 더 많아졌다면 그런 동요가 일 가능성은 추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 성향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정권 입맛 맞추기용 정보’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전문가는 “보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북한이 3년 안에 붕괴할 거란 보고를 꼭 올린다는 우스개도 있다”며 “그렇다면 정부가 급변사태를 준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는 반응이었다.
반면 조한범 박사는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는 9만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며 “북한 당국의 유일한 돈줄이기 때문에 당국은 노동자들을 귀국시키는 만큼 새로 보내려 하고 중국은 국제사회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의식해 받지 않으려 하면서 노동자 귀국 문제가 교착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분규는 외교적 문제와 북한 당국의 정책 실패까지 결합된 구조적 문제로 과거 분규와 차원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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