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편집실에서]
장애인, 그리고 농업.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단어가 연결될 일이 있을까요.
한국에서 장애인은 그들이 차지하는 규모에 비해 작게 보입니다. 특히 발달장애인은 여전히 길에서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이 대부분 집에만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발달장애인 등 주간 보호시설이 필요한 장애인은 20만명인데 수용 가능한 인원은 1만명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들을 돌봐야 하는 가족도 ‘집 말고 갈 곳’이 절실한데 말입니다.
장애인과 가족에게 농촌, 정확하게는 농업 현장을 ‘치유의 공간’으로 제공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작물을 수확하면서 심리적 만족감을 얻으면 거친 행동도 바뀌고, 사회성과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장애인 일자리로 가장 적합한 분야도 농업입니다. 제품 불량이 치명적인 제조업과 달리 농업은 실수와 느림도 품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농업은 장애인을 일터로 끌어내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주간경향 1569호 표지 이야기는 장애인과 농업이 결합한 ‘치유 농업(케어파밍)’ 현장을 소개합니다. 농업과 복지가 연결된 치유 농업은 네덜란드에서 1990년대 후반 등장했다고 합니다. 새로운 소득을 창출하고 싶어하는 농업인과 시설의 대안을 찾고자 한 사회복지·시민사회 영역, 농업의 다원화를 장려하려는 정부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하네요. 이후 많은 나라로 퍼졌고, 한국에서도 2021년 3월 치유농업법이 시행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왔습니다. 올해 전국에서 92개 사회적 농장과 30여개 치유농장이 운영 중입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치유 농업이 확산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일본은 장애인 복지서비스의 일환이면서 농촌 일손 부족 문제도 해결하는 ‘윈윈’ 모델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처럼 산업도 장애·비장애인 모두 일할 수 있는 유니버설 산업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존 일자리에 장애인을 맞추는 게 아니라 장애 특성에 맞는 일을 주면 가능합니다. 장애는 문제가 아니라 단지 사람의 특징 중 하나이며, 그 특징에 맞게 시스템을 바꿔 주면 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미니 청경채를 생산하는 일본의 농장 쿄마루엔입니다. 쿄마루엔의 스즈키 아츠시 대표를 온라인으로 인터뷰해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쿄마루엔은 직원의 4분의 1 정도가 장애인이라고 합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은 농업을 통해 잃었던 활기를 되찾고, 농업은 장애인을 통해 부족한 일손을 메울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농업과 복지의 연계로 고령화와 장애인 복지, 농촌 소멸 등 사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습니다. 꿈같은 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난제를 해결해온 것은 언제나 더 큰 상상력과 과감한 실행이었습니다.
홍진수 편집장 soo4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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