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강화 하세월에…개미투자자 대신 나선 공정위 [뉴스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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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서울고등법원은 에스케이(SK)㈜가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2021년 말에 부과한 시정명령을 취소하라며 에스케이 쪽 손을 들어줬다.
ㄱ교수는 "우리 상법이 약하다보니 공정위가 자꾸 나서게 되고, 그러다보니 상법이 더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비록 공정거래법이 상법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주고 있지만, 경쟁법보다는) 상법을 근거로 한 일반주주 소송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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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상법이 발전해 소액주주 소송이 활발했다면 굳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설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경쟁법 전공 ㄱ교수)
올해 1월 서울고등법원은 에스케이(SK)㈜가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에게 ‘사업 기회’를 제공한 행위에 대해 공정위가 2021년 말에 부과한 시정명령을 취소하라며 에스케이 쪽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에 대해 경쟁법 전문가에게 의견을 묻자 ‘상법’이 발전해야 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에스케이㈜는 엘지(LG)실트론(현 SK실트론) 인수를 결정한 뒤 2017년 엘지그룹과 사모펀드(KTB PE)로부터 각각 51.0%와 19.6%의 지분을 샀다. 이후 우리은행 등 실트론 채권단이 보유한 나머지 지분(29.4%)은 최태원 회장이 사들였다.
공정위는 에스케이가 ①‘합리적인 검토 없이’(이사회 의결 절차 생략) ②‘사업 기회를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에스케이㈜가 주식 인수를 포기하고, 그 기회를 그룹 회장인 최 회장에게 줬다는 얘기다. 당시 공정위는 최 회장이 취득한 주식 가치(부당 이득)가 취득 시점 대비 1967억원 상승했다고 추산하고, 에스케이㈜와 최 회장에게 각각 과징금 8억원씩 부과했다.
법원은 ‘사업기회 제공’ 대목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에스케이㈜가 최 회장이 취득한 주식에 대한 처분권을 당초에 갖고 있지 않았으니, 이를 에스케이㈜의 사업기회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건의 사업 기회를 ‘입찰에 참여해 실트론의 나머지 지분 29.4%를 취득할 수 있는 기회’로 본 것과 정면 배치된다.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결이 내려질 전망이다.
이번 사건은 ‘부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익편취를 제재한 첫 사례로 업계 안팎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직접적인 제공 행위가 없는, 즉 이익이 되는 사업기회를 포기하는 것도 사익편취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처음 만들어지는 과정인 셈이다. ‘부작위 사업기회’ 조항은 공정거래법에는 없고, 공정위 심사지침에만 담겨 있다. 공정위가 행정법규(심사지침)를 지나치게 확장 및 유추 해석했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경쟁법 전문가 ㄴ교수는 “실트론 사건이 사업 기회와 관련된 초창기 사례여서 아직 경계선이 명확히 그어지지 않은 규제였다. 이번 사건은 이 선이 명확해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출신 ㄱ교수도 “그동안 회색지대에 있던 문제였다”고 말했다. 실제 공정위 제재 이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계열사들이 보스턴 다이내믹스에 투자할 때 본인도 2천억원대 사재를 들여 지분 20%를 확보했는데, 사전에 이사회 승인을 거쳤다.
‘상법’을 언급하는 경쟁법 전문가도 꽤 있다. 미국 등에선 피해를 본 일반주주가 ‘상법’을 근거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디스커버리 제도(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당사자들끼리 관련 증거를 상호 조사·확인) 등 소액주주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가 미비한 탓에 소송 사례가 전무하다. 이런 까닭에 조사 권한을 갖고 있고 행정력을 동원해 증거 확보가 가능한 공정위 조직이 일반 주주 대신에 제재에 나서는 경향이 우리 경쟁법의 독특한 풍경이다.
ㄱ교수는 “우리 상법이 약하다보니 공정위가 자꾸 나서게 되고, 그러다보니 상법이 더 발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비록 공정거래법이 상법의 공백을 어느 정도 메워주고 있지만, 경쟁법보다는) 상법을 근거로 한 일반주주 소송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기회 유용(제공) 조항은 2011년 상법에 먼저 도입된 뒤 2년 만에 공정거래법에도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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