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디에서 탈출하고 싶었을까[박희숙의 명화 속 비밀 찾기](4)
인공지능의 발달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세상을 보여준다.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주행할 수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그림이나 음악을 완성하기도 한다. 직접 가보지 않고도 오지를 탐험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인공지능은 우리 생활에 편리성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로는 본래와 다른 의도로 사용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즉 지진이나 전쟁 사진을 교묘하게 편집해 실제보다 더 참혹하게 표현한 이미지로 후원을 유도하거나 정치인의 이미지를 실제와 다른 모습으로 묘사해 진실처럼 보이게도 한다. 인공지능 때문에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된 것이다.
진짜의 이미지와 가짜의 이미지를 혼동하게 만든 대표적인 작품이 페레 보렐 델카소(1835~1910)의 ‘비평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소년이 어두운 실내를 벗어나기 위해 두 팔로 창틀을 잡고 오른쪽 발을 들어 창문을 넘어가고 있다. 소년의 창틀에 걸쳐져 있는 오른쪽 발은 밖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반쯤 벗겨진 상의와 드러난 어깨 그리고 무릎 위로 올라간 바지는 탈출 순간의 절박함을 암시한다.
흰자위가 반쯤 보일 정도로 크게 뜨고 있는 눈은 탈출하기 위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며, 밖을 염탐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두운 배경은 암울한 현실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서 창틀은 액자다. 액자는 작품의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의미한다.
델카소의 이 작품에서 소년은 화가 본인의 심정을 뜻한다. 당시 델카소를 비롯해 착시효과를 극대화한 트롱프뢰유 화가(서양 미술사에서는 실물을 착각할 정도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트롱프뢰유, 즉 ‘눈속임 그림’이라고 한다)들은 비평가들의 비난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델카소는 도망치는 소년으로 악평 때문에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대변했다.
19세기 말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트롱프뢰유 기법이 인기를 끌면서 전문 화가들도 나왔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물론 미술가들 사이에서는 비난이 점차 커졌다. 당시 사진의 발명으로 현실 세계를 똑같이 복제하는 기술은 더 이상 필요치 않게 되면서 화가들은 그림을 통해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였다. 즉 화가들은 완성된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의견과 입장을 밝힐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델카소는 그림이 만든 가상 세계로 통하는 창을 둬야 한다고 비평가들에게 주장하고 있다. 또 소년이 빠져나오는 창틀은 관람객에게 두 세계를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장치가 된다. 결과적으로 델카소의 이 작품은 트롱프뢰유를 상징하는 작품이 됐다.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현재 우리는 트릭아이 미술관에서 그림을 재미있게 체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가짜 이미지 때문에 피곤하다. 가뜩이나 복잡한 세상, 눈에 보이는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머리를 써야만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박희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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