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까지 잡아먹는 中 애국주의… ‘국민 생수’도 불매운동 타깃 됐다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4. 3.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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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눙푸산취안, 이달 들어 시총 3조원 증발
경쟁사 회장 별세에 공개 추모 생략이 발단
오너 일가 美 국적, 포장 왜색 논란까지 겹쳐
”애국주의 소비, 경영 환경에 치명적인 독”

중국 최대 생수 기업인 눙푸산취안(农夫山泉)의 시가총액이 이달 들어 3조원 가까이 증발했다. 경쟁사를 밟고 성장한 기업이라는 논란부터 오너 일가의 미국 국적, 일본풍의 음료 포장 등 각종 의혹이 줄줄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굴지의 해외 기업들을 중국 밖으로 몰아냈던 애국주의 소비 성향이 자국 기업까지 공격하자 중국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간 기업의 성장을 저해해 경제 동력을 갉아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13일 홍콩증권거래소에 따르면, 눙푸산취안의 시가총액은 지난 12일 기준 4790억9900만홍콩달러(약 80조2200억원)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달 28일(4959억6900만홍콩달러) 대비 3.4% 줄어든 것으로, 9영업일만에 168억7000만홍콩달러(약 2조8300억원)가 증발한 것이다. 같은 기간 주가는 44.1홍콩달러에서 42.6홍콩달러로 떨어졌다.

중국의 최대 생수·음료 기업인 눙푸산취안은 2022년 기준 시장점유율 26.5%의 업계 선두 주자다. 1990년대 중국 내 깨끗한 식수 수요가 늘어나던 때, 눙푸스프링은 다른 기업과 달리 ‘천연수’라는 점을 앞세워 마케팅에 나서 ‘국민 생수’ 반열에 올랐다. 중산산 눙푸산취안 회장은 개인 재산이 4500억위안(약 82조원)으로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중국 최고 부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서 농푸산취안 생수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면서 생수를 변기에 버리는 영상이 유행하고 있다./웨이보 캡처

건실한 눙푸산취안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6일 눙푸산취안의 경쟁사인 와하하 그룹의 쭝칭허우 회장이 별세하면서부터다. 자수성가의 아이콘인 쭝 회장의 사망은 중국 전역에 추모 분위기를 불러왔는데, 같은 업계에 몸담고 있는 중 회장이 공개적으로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그러면서 중 회장이 생수 사업에 뛰어들기 전 와하하의 영양제를 변형 판매해 큰돈을 벌었고, 생수 사업을 하면서도 와하하 제품을 깎아내려 지금의 지위를 얻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는 중 회장이 직접 나서 모두 사실무근이며 쭝 회장을 개인적으로 애도했다고 밝혔지만 사태는 더욱 커졌다. 중국 소비자들은 중 회장의 장남 중수쯔가 미국 국적자이며, 눙푸산취안 주주 중 원전 오염수를 방류한 도쿄전력의 대주주들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문제 삼고 나섰다. 여기에 2011년 출시된 눙푸산취안의 차 음료인 ‘둥팡수예’의 병 겉면에 그려진 건물이 일본 신사라는 논란까지 제기됐다.

중산산 눙푸산취안 회장./바이두 캡처

중국 애국주의 성향의 소비자들은 “눙푸산취안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과 반일 운동의 연장선”이라며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중국 각종 소셜미디어(SNS)에는 눙푸산취안 생수를 뜯어 변기나 하수구에 버리는 영상이 올라오고 있고, 일부 도시 편의점과 슈퍼마켓에서도 눙푸산취안 생수 진열대를 철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대로 와하하 그룹의 음료는 연일 품절 행진이다. 한 네티즌은 “와하하 음료를 구매하면 국가가 수익을 절반 가까이 가져가지만, 눙푸산취안 음료를 구매하면 수익 대부분이 중산산 가문의 재산이 된다”고 했다. 와하하 그룹의 경우 국유기업이 지분 46%를 가지고 있다. 광둥성 식품안전촉진협회의 주단펑 부회장은 “이번 여론 폭풍의 사회적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며 “눙푸산취안의 시장 점유율, 매출, 이익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애국주의 소비가 잘 나가던 국내 기업까지 끌어내릴 기미를 보이자 중국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중국 경제 회복이 절실한 상황에서 민간 기업의 성장을 독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깎아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눙푸산취안이 온라인 애국주의자들의 공격 표적이 되면서 취약한 민간 부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며 “정부가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온라인 여론의 이같은 반응은 민간 기업에 또 다른 도전을 제시한다”고 했다. 중국 펑미엔신문은 “(이번 사태는) 민간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 폭력”이라며 “마녀사냥을 통해 툭하면 때려죽이는 환경은 비즈니스 환경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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