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머니 가고 오피스코어 뜬다…젊어지는 '남성 정장' 시장
예일 등 온라인 캐주얼 브랜드도 정장 관련 상품 출시
이랜드리테일·삼성물산 패션부문, 남성 정장 집중하며 사업 키워
[=그간 외면받았던 ‘양복’의 시대가 돌아오고 있다. 2010년대 들어서며 근무복과 일상복의 경계가 허물어졌고, 이 과정에서 격식을 차리는 남성 정장은 캐주얼 스타일에 밀려 비주류가 됐다.
그런데 최근 Z세대를 중심으로 남성의 그루밍(피부, 옷차림 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행위)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다시 남성 정장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이름도 달라졌다. ‘정장’보다는 ‘미팅웨어’, ‘셋업룩’ 등으로 불린다.
정장류 제품이 포함되는 ‘오피스코어(Office Core)’는 올해 패션업계의 핵심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캐주얼 브랜드들도 정장 상품을 출시하는 등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미팅웨어’로 재탄생한 남성 정장, 2024 트렌드로
최근 들어 패션업계가 남성 정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이랜드글로벌은 지난 4일 남성 정장부터 캐주얼 의류, 가죽 잡화까지 한 공간에서 풀 코디네이션이 가능한 ‘신사 복합관’을 새로 선보였다.
이랜드글로벌이 신사 복합관을 오픈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남성 고객이 백화점에서 여러 곳의 매장을 이동하지 않고 신사 의류의 풀코디를 한 번에 완성할 수 있도록 쇼핑의 편리성을 높였다. 매장은 NC수원터미널점에 있다.
이번 신사 복합관의 특징은 ‘MZ세대’를 타깃으로 했다는 점이다. 남성 정장의 주요 구매층은 4050세대로 2030세대의 수요는 많지 않다. 실제 G마켓의 ‘남성 정장’ 세대별 구매 비중에 따르면 2030 고객은 16%에 불과하지만 4050 고객은 70%에 달한다. 자율 복장제 도입 등 회사의 복장 규정이 완화되면서 캐주얼복이 일상화된 영향이다. 또 정장은 캐주얼복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아 젊은층의 구매 부담이 큰 것도 중요한 문제다.
이랜드리테일은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로 구성했다. 사회 초년생인 MZ세대부터 고급스러운 소가죽 아이템을 선호하는 4050세대까지 연령층에 상관없이 구매가 가능한 아이템을 편집 구성했다. 이랜드글로벌 관계자는 “남성 고객들의 ‘브랜드 입점’에 대한 요청이나 ‘남성 잡화류’ 증대 등 문의가 많다”며 “자신을 가꾸고 더 높은 감도의 풀코디 구성을 원하는 남성 고객의 수요에 맞춰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젊은층에서 남성 정장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 G마켓이 올해 1월부터 3월 5일까지 연령대별 남성 정장 매출을 살펴본 결과 30대 고객군의 전년 대비 매출 증가율은 77%로, 전체 고객 평균 증가율(47%)을 크게 웃돌았다. △정장 바지 92% △정장 세트 85% △정장 재킷 10% △정장 조끼 27% 등으로 집계됐다.
20대 남성 정장 매출은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특히 정장 세트 상품이 같은 기간 126% 급증했다.
2030세대가 주요 고객인 무신사, W컨셉 등에서도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 2월 무신사의 ‘슈트·블레이저’ 카테고리 거래액은 전달 대비 9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신사 관계자는 “일상에서도 드레스업을 하거나 오피스룩을 연출하는 ‘오피스코어’가 새로운 스타일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며 “블레이저, 슬렉스 등 클래식한 테일러링과 실루엣이 돋보이는 상품을 찾는 젊은 고객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즌 컨템포러리뿐만 아니라 캐주얼 브랜드도 새로운 컬렉션을 통해 정장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무신사에 입점된 캐주얼 브랜드 예일은 최근 ‘미팅웨어’라는 이름으로 남성 정장 종류인 재킷, 셔츠, 바지 등을 이번 시즌 새로 선보였다. 예일은 “캐주얼하면서도 격식을 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컨템포러리 브랜드인 포터리, 어나더오피스 등도 정장 제품을 지속 선보이면서 젊은층의 관심을 끌고 있다.
W컨셉에서도 지난 1월부터 2월까지의 남성 셋업 상품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늘었다. 제품별 증가율은 △셔츠 10% △블레이저 등 아우터 15% △슬랙스 10% 등이다. W컨셉에 입점된 더니트컴퍼니, 마인드브릿지 등은 신규 정장 상품을 출시하면서 젊은층의 정장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W컨셉 관계자는 “출근이 일상화되면서 셋업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남성복 브랜드 ‘갤럭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9월 현대적 감성의 남성복 ‘테일러드 엘레강스(Tailored Elegance)’를 새로운 BI로 발표하고, 글로벌 브랜드 ‘강혁’과 독창성과 창의성을 더한 제품을 선보이는 등 나섰다.
전 연령대에서 신규 남성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갤럭시의 라인업도 최고급 상품군으로서 비스포크 및 자체 상품으로 구성된 ‘란스미어’ 라인, 슐레인·슐레인 모헤어 등 자체 개발 소재를 적용한 ‘프레스티지’ 라인, 합리적 가격대의 ‘갤럭시’ 라인 등으로 나눴다.
‘오피스코어’에 ‘그루밍남’ 더해지니
트렌드에 따른 변화다. 지난해 패션업계의 핵심 키워드가 ‘올드머니룩(상속받은 돈으로 부자가 된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옷차림)’이었다면 올해의 패션 트렌드는 ‘오피스코어’가 꼽힌다.
오피스코어는 사무실을 의미하는 ‘오피스(Office)’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스타일인 ‘놈코어(Normcore)’의 합성어로, 직장룩의 일상화를 의미하는 신조어다. 캐주얼이 아닌 재킷, 셔츠, 슬랙스 등이 오피스코어룩에 해당한다. 1990~2000년대의 남성 정장 디자인 특징인 파워 숄더(어깨 라인이 두드러지는 형태), 클래식 테일러링(고전 정장 느낌이 나는 재단) 등 Y2K 요소가 들어간 게 특징이다.
여기에 Z세대 남성 중심의 그루밍 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그루밍은 마부(Groom)가 말의 털을 빗질하는 등 손질한다는 뜻에서 유래된 단어로 치아, 피부, 차림새 등 외모를 관리한다는 의미다.
오픈서베이가 발표한 ‘남성 그루밍 트렌드 리포트’(2022년)에 따르면 20~40대 남성 10명 가운데 8명은 평소 피부 관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가운데 7명은 기초화장품을 통해 피부 관리를 한다고 응답했으며 눈썹 관리를 하고 있는 남성 비중도 39.6%로 높게 나타났다.
특히 남성 본인이 그루밍 관련 정보를 직접 탐색하고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의 75.8%는 본인이 제품 선택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고 응답했으며 제품 구매 관련 정보 탐색은 실제 구매로 바로 이어지는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픈서베이는 “2049 남성들은 다양한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 피부 관련 제품을 구매한다”며 “수염·면도 관리와 헤어 스타일링, 탈모 관련 시장도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젊은층에선 주기적으로 눈썹·피부톤을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트렌드는 침체된 남성복 시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남성 정장 시장은 2010년 초반 6조원대까지 확대됐지만 2014년 4조원대로 줄어든 이후 큰 변화가 없다. 2020년 코로나19 영향으로 3조8810억원까지 줄어들었지만 이듬해 소폭 증가해 4조5209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남성 정장 시장 규모는 4조7258억원으로 집계됐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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