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이어 판매자까지 빨아들이는 알리…韓시장 종속될라
알리 역직구 지원 계획에 중소영세사업자 ‘우선 반색’
소비자·판매자 쏠림 심화→시장 종속 우려
“가격 경쟁력 없으면 생존 어려워”
[이데일리 김미영 기자] “국내 양말 생산 공장은 기존에 100여 곳이 있었다면 이젠 50여 곳도 남지 않았다. 해마다 10%씩 공장 문을 닫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중국 초저가 상품들 공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솔직히 모르겠다.”
서울 노원구에서 양말제조사업을 하는 김모씨는 “이런 흐름이면 향후 2~3년 내 국내 양말 업체들이 다 없어질지도 모르겠다”고 탄식했다.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 테무 등 초저가를 앞세운 중국 이커머스가 한국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면서 생업에 타격을 받고 있단 호소였다.
알리가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 지원책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가격경쟁력에서 중국 업체에 밀리는 한국 기업들에 실질적 도움이 될진 의문이란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중국 이커머스가 국내 제조·유통 생태계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단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김씨만이 아니다. 주얼리와 신발 등 패션 분야, 중국 OEM(주문자상표부착방식)으로 국내 판매하는 휴대전화 케이스, 우산과 같은 잡화 분야 등 사업자들이 중국 이커머스의 초저가 공세에 피해를 토로하고 있다.
중소 제화업체 대표인 이모씨는 “20년간 인터넷 쇼핑몰을 통해 제품을 팔았는데 지금이 최대 위기”라며 “1000원짜리 슬리퍼처럼 저가 상품들이 몰려오니 경쟁이 안된다. 잡화분야 사업자들 모두 장사를 접어야 하는 수순”이라고 토로했다.
중국 OEM으로 제화를 판매하는 박모씨도 “통관을 거치면 세금과 물류비, 인건비 등으로 고정비가 20~30%를 차지해서 중국에서 곧바로 들어오는 제품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며 “최근 2년 새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최근 2년은 알리가 국내시장 진출에 속도를 낸 시기와 맞물린다.
중국 이커머스 영향력 확대에 중소·영세사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단 우려가 커지자 알리는 ‘상생’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조만간 국내 기업들의 해외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한국에서 세계로’ 프로그램을 내놓을 계획이다. 구체적인 내용 발표는 미룬 상황이지만 세계 150여개국에 진출해 있는 알리 플랫폼을 통해 해외 역직구를 지원하겠단 게 골자로 전해진다.
일단 국내 소상공인·중소기업은 반색하고 있다.
김씨는 “입점하면 수수료를 안 받고 광고도 저렴하게 해주겠다고 알리, 테무에서 연락을 받고 고민 중”이라며 “주거래처인 국내 이커머스와의 관계 때문에 망설이고 있지만 해외 판로를 열어준다면 솔직히 ‘혹’하지 않을 사업자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 양천구에서 소형가전사업을 하는 최모씨도 “중국 등지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을 터준다면 당연히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CJ제일제당(097950), LG생활건강(051900) 등 대기업들은 이미 알리 K베뉴에 입점한 데다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티몰, 징둥닷컴 등 플랫폼을 통해 중국에서 자사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자체적인 해외 판로도 보유 중이다. 이 때문에 알리의 국내기업 해외 판매 지원시 중견·중소기업이 혜택을 볼 것이란 관측이 있다.
그럼에도 의구심은 남는다. 우선 이들 기업의 역직구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다. 국내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낮은 영세사업자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알리가 원하는 초저가에 맞춰 납품할 수 있는 한국 제조업체가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납품가 경쟁력이 없으면 소용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알리의 경우 국내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단 점도 우려 대목이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알리는 이미 지난달 기준 앱 사용자 수가 2위(818만명)이고, 테무는 4위(581만명)다. 1위인 쿠팡(3010만명)과 아직 격차가 있지만 작년 한해에만 알리 317만명, 테무 354만명이 늘어나는 등 무서운 기세로 사용자 수가 늘고 있다.
최근엔 K베뉴에서 입점·판매 수수료를 받지 않는 파격 혜택으로 국내 판매자도 빨아들이는 중이다. 판매자들은 최대 두자릿수의 수수료를 받는 쿠팡, G마켓, 11번가와 같은 국내 이커머스가 아닌 알리를 통해 판매하면 이윤을 더 많이 남길 수 있다.
K베뉴에 입점한 한 생활용품 기업 관계자는 “국내 한 이커머스는 기본 수수료뿐만 아니라 연매출이 전년 대비 5% 이상 증가하면 성장장려금 명목으로 수수료를 더 받아간다”며 “알리 등 해외플랫폼 수수료 조건이 훨씬 더 좋다”고 했다.
알리가 4월부터 K베뉴 셀러들에 수수료를 부과키로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알리는 부인했다. 알리 관계자는 “K베뉴를 통해 국내 소비자의 수요를 더 잘 충족시키기 위해 더 많은 현지 셀러 및 브랜드들을 유치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채택을 가장 중시한다”고 했다.
공식적으로 부인했지만 알리의 수수료 부과설은 한국 시장이 이대로 잠식당할 경우 알리가 어떻게 시장을 쥐고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비자와 판매자들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면 경쟁 이커머스 등은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고 독보적 지위에 오른 알리가 가격 인상, 수수료 인상 등 ‘갑질’을 하더라도 맥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유통업계에선 나오고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알리가 한국에서 펴고 있는 전략은 전폭적인 물량공세로 경쟁자들을 고사시키고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이라며 “영세 제조업자뿐 아니라 이커머스를 포함한 유통채널 모두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다.
서용구 교수는 “국내외 모두 중국 이커머스의 영향력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며 “유통시장에서 판매를 중지시키지 않는 한 뾰족한 규제도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2~3년 안에 알리, 테무 등의 국내매출이 연 10조원씩은 될 것”이라며 “새 공급자가 만든 새로운 시장에서 생존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미영 (bomnal@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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