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물러나는 앙리 총리···'무법 천지' 아이티 사태 풀릴까

김경미 기자 2024. 3. 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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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갱단 거센 압박에 사임하는 앙리 총리
공권력 무너진 아이티, 극적 해결될까 관심
"G9 수괴 셰리지에는 잔혹한 범죄자일뿐"
"이익 위해 언제든 말바꿔···긴장 놓지 말아야"
사임한 아리엘 앙리 아이티 총리/AP연합뉴스
[서울경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가 무장 갱단의 수도 점령으로 무법 천지로 변한 가운데 아리엘 앙리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점령한 채 무장 폭력을 주도하고 있는 갱단 연합체 ‘G9’의 협박과 아이티 사태 해결을 위해 나선 미국 등의 거센 사임 압박 끝에 끝내 총리직에서 물러나기로 한 셈이다. G9의 두목인 지미 셰리지에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앙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나지 않고 국제사회가 앙리를 계속 지지한다면 아이티는 대량학살로 이어지는 내전을 겪을 것”이라고 협박한 바 있다.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남미 국가 협의체인 ‘카리브 공동체(CARICOM·카리콤)’는 앙리 총리가 최근 사임과 ‘과도위원회’로의 권력 이양에 합의했다고 전했다. 카리콤의 순회의장국인 가이아나의 모하메드 이르판 알리 대통령은 이날 자메이카에서 열린 카리콤 회의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의 길을 열기 위한 과도 통치 합의 약속을 발표하게 돼 기쁘다”며 “우리는 아리엘 앙리 총리의 사임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카리브 공동체의 발표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자메이카 인근으로 날아가 카리브해 지역 정상들과 아이티 사태를 놓고 긴급 회동한 가운데 나왔다. 카리콤은 수도 포르토프랭스 대부분 지역이 무장 갱단에 점령된 채 통제 불능에 빠진 아이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날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한 미국 정부 당국자는 앙리 총리가 카리콤 회의에 참석 중이던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전화를 걸어 사의를 직접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아이티의 한 남성이 불타는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앙리 총리의 사임은 아비규환에 빠진 아이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수십 년 간 이어진 빈곤과 자연재해, 정치적 불안정에 시달려온 아이티는 2021년 7월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 이후 더욱 극심한 혼란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점령한 갱단 연합체 G9의 수괴 지미 셰리지에는 모이즈 대통령의 암살 배경으로 아리엘 앙리 총리를 지목, 그의 사임을 요구하며 경찰 등 치안 당국과 혈전을 벌여왔다. 특히 갱단은 앙리 총리가 케냐 방문을 위해 자리를 비운 지난달 29일부터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한 맹공격을 가했다. 경찰서와 교도소, 병원, 항구, 공항 등을 습격했고 약탈했다. 특히 지난 3일에는 포르토프랭스의 국립교도소를 습격해 4000여 명에 이르는 재소자를 탈옥시켰다. 폭동 직후 아이티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갱단의 폭력 사태는 더욱 거세졌다. 8일에는 대통령궁 인근에서도 총격전이 벌어졌을 정도다. 워싱턴포스트(WP)는 “거리에 총에 맞아 숨진 시신이 널렸지만 갱단이 막고 있어 수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토니 블링컨(왼쪽부터) 미국 국무장관, 이르판 알리 가이아나 대통령, 앤드루 호니스 자메이카 총리가 11일(현지 시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카리브공동체(CARICOM·카리콤) 정상회의에 참석해 아이티 폭력 사태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미국·독일 등 서방 대사관 직원들이 긴급 대피를 하는 등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악화하자 미국 정부도 적극 개입을 시작했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6일 앙리 총리를 향해 “새로운 통치 구조로 신속히 전환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아이티 갱단의 핵심 요구인 ‘사임’과 관련해 “우리는 사임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포용적인 형태의 ‘과도 위원회’ 성격의 정부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카리브 공동체가 발표한 ‘사임’과 ‘과도위원회’로의 권력 이양도 미국의 제안과 맞닿아 있는 셈이다.

아울러 미국은 아이티 폭력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날 카리브 공동체와 긴급 회동을 했고 아이티에 파견할 다국적 안보지원단에 대한 1억 달러 추가 지원과 3300만 달러의 인도주의 지원을 약속했다. 회담에 참석한 토니 블링컨 장관은 “(폭력 악화는) 아이티 국민들이 버티기 힘든 상황을 만들고 있으며 정치, 안보 양쪽에서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고 있다”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아이티 국민만이 그들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다”며 지원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G9을 이끌고 있는 지미 셰리지에/로이터연합뉴스

다만 앙리 총리의 사임으로 아이티 사태가 수습될 지는 미지수다. G9의 수괴인 셰리지에는 스스로를 ‘카리브해의 로빈후드’라 부르며 ‘빈민을 위해 부패한 정부와 맞서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가 ‘잔혹한 범죄자일뿐’이라며 경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핵심 요구 사항인 ‘앙리 총리 사임’만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경찰 출신에서 갱단 두목이 된 셰리지에는 ‘바비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잔혹한 행위를 일삼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 그는 젊은 시절 경찰 폭동진압부대에서 근무했으나 71명이 사망한 빈민가 학살 사건에 가담하는 등 범죄 행위를 일삼다 2018년 경찰에서 쫓겨난 뒤 갱단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티 비영리단체인 라코우 라페의 루이 앙리 마르스 국장은 과거 파이낸셜 타임스(FT) 인터뷰에서 “셰리지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언제든 약속을 뒤집는 인물”이라며 “그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화산 같은 사람이며, 카리스마가 있지만 동시에 폭력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가디언도 셰리지에가 다른 갱단처럼 아이티 정치권과 결탁하고 있으며 정치적 야망도 있다고 논평했다. 특히 셰리지에는 암살된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셰리지에는 미국과 유엔의 제재를 받는 유일한 아이티인이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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