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정부 심판’ 들끓는 광주…‘강한 야당’ 만들기 전략적 표심
조국혁신당 20%·새로운미래 7%…조국당 크게 뛰어
“막말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아도 경우가 있고 상도덕이 있어. 내 몫이 아니면 ‘내 몫이 아닌갑다’ 한다고. 근데 윤석열 대통령은 경우가 없어.”
지난 11일 광주 광산구 비아동 오일장에서 좌판에 잡곡 봉투를 늘어놓던 상인 강행원(55)씨의 목소리가 4·10 총선 얘기에 높아졌다. 강씨는 대통령실의 사적 채용 논란, 총선 개입 의혹 등을 일일이 꼬집으며 말을 이어갔다. “광주 정서는 하나예요. 이렇게 불합리한 세상을 두고 (정치인들이) 입 닫고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냐는 거지.” ‘윤석열 정부의 실정을 바로잡을 강한 야당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4월 총선이 한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의 심장’으로 꼽히는 광주는 윤석열 정부 심판을 요구하는 민심으로 들끓고 있었다. 11~12일 한겨레가 만난 광주 시민들은 윤석열 정부와 대척점에서 “제일 잘 싸울 야당”에 기꺼이 표를 던지겠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어떤 야당의 손을 들어줄 것이냐는 문제 앞에선 복잡한 심경이 읽혔다.
현재 호남 표심에 무게를 두고 각축전을 벌이는 건 이재명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과 이낙연 공동대표가 이끄는 새로운미래, 조국 대표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5~7일 전국 성인 1천명을 전화조사원 인터뷰해 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광주를 포함한 호남의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이 55%, 조국혁신당이 11%, 새로운미래가 3%다. 그런데 비례대표 투표 의향에선 민주당의 야권 비례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이 47%, 조국혁신당이 20%, 새로운미래가 7%로 수치가 많이 달라진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누리집 참조) 민주당 지지층 일부가 비례대표 투표에선 더불어민주연합이 아니라 조국혁신당·새로운미래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광주의 민주당 지지층 표심을 더 크게 흔드는 건 “검찰 정권 조기종식을 위한 쇄빙선”을 자처하며 강경한 대정부 투쟁 기조를 강조하는 조국혁신당이었다. 물론 “정치는 초심과 소신으로 시작해 보신으로 끝나지 않나”라며 “조국혁신당이 잘해낼지 모르겠다. 일종의 유행 같단 생각이 든다”는 조아무개씨처럼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은 기대가 더 커 보였다. 강행원씨는 “조국혁신당은 ‘검찰 정권’의 피해자들이 모인 ‘공격수 정당’으로, 우리 마음의 소리를 잘 대변해줄 것 같다”며 “투표를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조국혁신당을 찍으러 갈 생각”이라고 했다. 민형배 민주당 의원(광산을)의 “열혈 지지자”라는 광산구 주민 이연희(52)씨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에 투표)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선택의 바탕엔 “민주당이 1987년 민주화 이래 최대 의석을 차지했는데도 정권을 내줬고, 윤석열 정부 견제도 제대로 못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오랜 동지’에게 차마 등을 돌리지 못해 지역구 선거에선 민주당에 투표하지만, 비례대표 선거에선 ‘새로운 친구’에게 회초리를 들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서구에 사는 김아무개(41)씨는 “민주당은 180석(21대 총선 결과 기준)을 갖고도 정부나 국민의힘에 많이 끌려다녔는데, 조국 대표가 나와서 가려운 데를 긁어줬다”고 했다. 안재석(58)씨는 “윤석열 정부가 답이 안 나오는 상황에서 야당이 똘똘 뭉쳐야 하니 ‘민주당 심판’을 유예하는 것일 뿐, 민주당이 잘했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광주 8석 가운데 민주당이 차지하고 있는 7개 지역구의 후보 경선에서 현역 의원이 대부분 탈락해 ‘물갈이’된 것은 이런 ‘광주의 실망’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정부가 잘못한 일에 목소리를 안 낸다면 국민의힘 의원과 다를 바 없다”(식당 운영 서민주씨), “우리가 원하는 정치인은 눈앞에 총칼이 있어도 할 말은 꼭 하는 사람”(부동산 중개인 박나순씨)이라는 것이다.
광산구에 거주하는 50대 오아무개씨는 민주당 공천 파동 등을 지켜보며 새로운미래 쪽으로 마음이 돌아섰다고 했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10일 광주 광산을 출마를 선언했다. 오씨는 이 대표 얘기가 나오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 ‘사당’이 돼버렸다. 이낙연 대표가 그래도 가장 인간적이고 정치에 격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같은 동네에서 원예자재 가게를 운영하는 김필웅(65)씨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들어도 가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처절하게 싸워야지. 당에서 햇볕만 쬐고, 좋은 자리에만 있었던 사람이 진짜 싸워야 할 때 싸운 적 있나.” 민주당에서 5선 의원, 전남지사, 국무총리까지 지냈으나 결국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이낙연 대표의 행보가 “민주당 훼방꾼”이라는 이도 있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런 광주의 민심 흐름을 두고 “호남의 민주당 지지층은 진보당 등이 들어간 더불어민주연합보다 조국혁신당에 표를 주는 게 민주당에 도움이 되는 최적의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반면, 새로운미래에 대해선 민주당 중심으로 단결해 정권을 교체하는 걸 방해한다는 인식이 강해 보인다”고 풀이했다.
광주/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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