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사태에…'은행 판매 허용'한 금융당국 책임론

CBS노컷뉴스 박성완 기자 2024. 3. 13.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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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은행에서 15조 원 넘게 판매한 홍콩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 ELS 상품을 중심으로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하고, 불완전판매 사례까지 확인되자 이 상품 판매를 허용한 금융당국에도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9년 DLF 사태 때 은행에서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가, 한 달 만에 은행권 요구를 받아들여 주요 주가지수 연계 ELS 신탁 상품 판매는 허용한다고 방침을 뒤집었습니다.

이 결정이 이번 ELS 사태의 출발점이 됐다는 지적이 금융권에서 제기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ELS 사태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은행 판매 제도 개선 방안을 다시 고민하고 있습니다.
황진환 기자

은행권을 중심으로 불완전판매 사례가 대거 확인된 홍콩H지수 기반 ELS(주가연계증권) 사태를 둘러싸고 금융당국에도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금융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은행이 이런 고위험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방침을 세웠다가 얼마 안 가 업계 요구를 받아들여 판매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허용 이후 당국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 삼은 ELS는 주로 은행을 통해 신탁 상품(ELT) 형태로 개인 고객들에게 많이 팔렸다. 해당 지수가 일정 기준폭을 넘어 하락하지만 않으면 원금과 약정 이자를 지급하는 구조로, 은행은 판매 수수료를 챙긴다. 만약 기준폭을 넘어 지수가 폭락하면 지수 하락률만큼 원금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된다.

작년 말 기준 금융권 ELS(ELT 포함) 판매 잔액 18조 8천억 원으로, 은행 판매 잔액만 15조 4천억 원이며 이 가운데 14조 4천억 원어치가 개인 고객에게 판매됐다. 2021년 2월 12271.60까지 올랐던 홍콩H지수가 반 토막도 안 되는 지난달 말 수준(5678)을 유지할 경우 올해 하반기까지 전체 예상 손실액은 5조8천억 원에 달한다.

원금 보장 상품 중심 취급기관인 은행에서 이런 고위험 상품을 다루는 건 적절치 않다는 문제제기는 과거에도 있었고, 금융당국은 한 때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판매 금지 방침까지 세우기도 했다. 2019년 11월 대규모 원금 손실이 발생한 '은행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때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안'에 해당 방침이 담겼다.

홍콩지수. 연합뉴스


구체적으로 원금 손실률이 20%를 초과할 수 있는 ELS 신탁 상품 등 고위험(고난도) 상품의 은행 판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당국은 발표 자료에 "은행은 원리금 보장 상품 중심 취급기관으로 자리 잡아 원금 손실률이 높은 고위험 상품 판매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그러나 한 달 뒤 은행장 간담회 이후 당국이 다시 발표한 '최종안'에서는 홍콩H지수 등 일부 지수 연동형 공모 ELS에 한해서는 신탁 상품 판매를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방침이 뒤집혔다. 당시 당국은 "은행권이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전제로 기존에 이미 판매한 대표적인 지수에 한해 허용해줄 것을 요청해왔다"며 "감독·검사, 판매규제 강화와 함께 은행권의 건의를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고위험 상품 불완전판매의 주체인 은행 뿐 아니라, 위험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판매를 허용해 준 금융당국도 이번 ELS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는 지난 4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2019년 당국의 방침 수정을 언급하며 "투자자 보호를 외면한 채 은행이 위험상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준 격"이라며 "철저한 자기반성과 관리·감독체계 개선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황진환 기자


금융정의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ELS 은행 판매 허용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당국에 대한 감사원 공익감사를 지난달 15일 청구하기도 했다. 감사 청구 내용에는 "금융위가 은행에서 고난도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 있게 허용하는 과정에서 불성실하거나 부정하게 업무를 처리하거나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확인해 달라"는 요구 등이 포함됐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12일 통화에서 "(판매 허용 이후인) 2020년 당국 발표 내용엔 ELS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언급된 대목도 있다"며 위험을 인지했다면 철저한 관리·감독도 뒤따랐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0년 7월 금융위와 유관기관이 발표한 '파생결합증권시장 건전화 방안'에는 ELS와 관련해 "리스크는 간과하고 고수익만 강조하는 불완전판매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는 진단이 담겼다. ELS 은행 판매 허용 방침 발표 때 핵심 고위직이었던 한 금융위 퇴임 인사는 이 같은 책임론에 대한 의견을 묻자 말을 아꼈다.

한편 이번 ELS 사태를 계기로 금융당국은 재차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둘러싼 규제 방안을 고심하는 기류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날 판매 규제 문제와 관련해 "종합적으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다음에 제도를 개선해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불완전판매 재발 방지에 초점을 두고 제도 개선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은 같은 날 은행·은행지주회사 임직원 등을 대상으로 금융감독 업무 설명회도 열어 불공정 영업 행위 점검 등 소비자 피해 사전 예방과 개선을 주문했다. 박충현 금감원 부원장보는 이 자리에서 "리스크 관리와 내부통제 문화가 은행에 확고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은행권 지배구조 모범관행과 내부통제 혁신방안의 안착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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