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 이렇게] ②2000명 늘리면 필수·지역의료 살릴 수 있을까
행위별 수가제 개혁·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해야
[편집자주]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본질은 비단 의사 수를 몇 명 늘리느냐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간 의료 현장의 부조리들을 개혁하려는 몇 차례의 시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특정 집단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해야 했습니다. 지금이 의료 개혁의 적기라고 말합니다. 지금 또 물러서면 소모적인 갈등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료개혁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 지를 짚어봅니다.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2000명.
지난달 6일, 정부가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는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현재 의대 정원 3058명에 2000명을 더해 한 해 입학하는 의대생 수는 단번에 5058명이 된다.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035년까지 의사 수 1만명을 늘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오늘 회의가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에 성큼 다가서는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라며 "필수의료를 살리고 고령사회에 대비한 의료체계를 구축할 마지막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라고 선언했다.
의료계는 발칵 뒤집혔다. 2000명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어 투쟁을 시작했고, 그사이 전공의의 약 93%가 병원을 떠났다. 의대도 텅텅 비었고 이젠 교수들마저 떠날 태세다.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의 근거로 참고했다는 서울대학교 연구를 진행한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의사 수가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2000명은 사실 너무 많다"며 "오히려 1000명 이상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했고 결론에 의료제도 개혁이 중요하다는 말을 했다. 의료 개혁을 어떻게 할 거냐 이게 답이고, 근본은 거기에 있다"고 말했다.
◇필수의료 살리기 핵심은 수가 체계 개선…"행위별 수가제 개혁 우선"
전문가들은 정부도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는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수가 체계에 대한 개혁과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홍 교수도 "의료 개혁이 빠진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몇 명을 늘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홍 교수는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타계하기 위해선 현재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기반을 두고 있는 행위별수가제를 개혁하지 않고선 이 문제는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행위별수가제는 말 그대로 의사가 진료를 할 때마다 진찰료, 검사료 등 가격을 매겨 진료비를 산정하는 제도다.
홍 교수는 "행위별수가제는 지속 가능한 시스템이 아니다"라며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는 행위가 줄어드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느냐. 응급수술 수가가 MRI 찍는 수가보다 낮다면 누가 긴 시간을 들여 응급수술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MRI와 같은 영상 검사는 원가의 116%, 검체 검사는 142%를 수가로 돌려받는다. 하지만 수술은 81.5%, 처치는 83.8%, 진찰이나 입원은 85.1%로 수가가 원가에도 못 미친다.
생명을 살리는 뇌동맥류 수술 수가는 쌍꺼풀수술 비용과 비슷한 290만원이다. 제왕절개 초산 비용은 40만원에 불과하다.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제왕절개 비용이 타이어 갈아끼는 값보다 못하다"고 자조하기도 한다. 뇌동맥류 수술은 일본은 1200만원, 미국은 6000만원에 달한다.
여기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수술은 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사고가 나면 소송의 위험까지 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도 "예를 들어 피부과나 성형외과에서 사람을 꿰매도 20만원을 받고, 고난도 수술을 해도 20만원을 받으면 누가 필수의료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홍 교수는 "행위별 수가 체계가 아닌 사망률이 얼마나 줄었는지, 치료가 어떻게 됐는지 등을 따지는 가치기반 지불보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정부도 이에 대해 검토하고 있고 필수의료 패키지에도 들어가 있어 지켜봐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너도나도 아프면 "서울 큰병원으로!"…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해야
수가 체계 개편과 더불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도 의료 개혁에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될 요소다.
지방의 인구가 줄어드는 것과 동시에 반나절이면 전국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환자도, 의사도 모두 서울의 대형병원을 선호하면서 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1·2차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질병임에도 환자들은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서 소위 빅5 병원을 찾는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도 이러한 현상을 타파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홍윤철 교수는 "의사 수 늘려 공급하는 것이 지역의료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인지는 의문"이라며 "지역간 격차를 이해하지 않고 의사 수 추계를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배진곤 계명대동산병원 산부인과 교수도 "환자들이 계속 와야 병원도 운영이 되고 의사들도 여러 환자를 만나 치료 경험을 늘려야 하는데 정작 치료는 서울 가서 받겠다고 하면 지방 의사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며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경증에도 응급실을 가고 서울로 향하는 환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함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지역완결형 의료체계가 구축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주열 교수는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결국 공공의료가 들어와야 한다"며 "각 지역별 의료문제와 해결 방안에는 차이가 있을 테니 광역단체 시도가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의 핵심 역할 담당해 보건복지부와 함께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운영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의 의료이용 행태 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정책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 공공병원을 불신하고 서울의 대형병원만을 선호하는 것에서 벗어나 진료권 내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료전달체계 구축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증 및 진료권 이외 지역 의료기관 이용시 본인부담금 강화 등도 고려해야 한다"며 "진료권별로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작동할 수 있도록 국립중앙의료원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료체계 구축 방안과 국립대병원-지방의료원을 연계해 수련의 과정을 공동 운영하는 등의 방안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 중앙정부가 지방의료원에 일정한 법정 예산 지원 법적 근거 마련하고 특례시를 제외한 시군 의료기관 필수의료 분야에 지역 수가를 적용하는 등 재정적인 뒷받침도 함께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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