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삼성전자 홀로 고전, ‘초격차’ 줄고 ‘속도전’ 밀리는 K반도체
올 들어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주가가 연일 급등하는 속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삼성전자 주가는 9% 하락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에 필수적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경쟁에서 뒤처진 데다, 주문형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분야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HBM을 독점 공급해 K반도체의 체면을 세우고 있었는데, 얼마 전 마이크론이 4세대를 건너뛰고 5세대 HBM3E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이마저도 위협받게 됐다.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가 HBM에선 3등으로 추락할 처지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세계 최초로 12단 HBM3E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시장 반응은 냉랭하다. 외국인은 최근 5일간 삼성전자 주식을 965만주나 팔아치웠다. 양산 가능성과 생산성, 엔비디아 납품 가능성에 낮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 3월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를 개발, 파운드리 시장을 개척할 게임 체인저라고 자랑했지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2021년 18%에서 2023년 11%로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경쟁자들 도전도 거세지고 있다. 미국 인텔은 “2027년부터 1.4나노 공정을 양산해 2030년까지 세계 2위 파운드리가 되겠다”며 ‘삼성 추월’을 선언했다. 메모리 반도체 패권을 한국에 빼앗긴 일본은 TSMC·인텔과 손을 잡고 범용 메모리 반도체와 2나노급 시스템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일본 정부가 지원한 대만 TSMC 구마모토 공장은 착공한 지 불과 1년 10개월 만에 준공하는 가공할 속도를 과시했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는 ‘초격차’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고, 차세대 생산 라인 구축을 위한 속도전에서도 경쟁국에 밀리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2019년에 투자 의향서를 제출했으나 토지 보상, 용수 공급 문제 등으로 지연돼 이제 부지를 조성하고 내년 3월에 1기 공장 착공에 들어간다. 삼성전자 평택 공장도 송전탑 문제로 5년을 허비했다. 경쟁국들은 민관(民官)이 국가 차원 총력전을 벌이는데 어떻게 경쟁을 이겨낼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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