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남성복에도 트위드 바람이 분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 2024. 3. 1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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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플루이드 흐름 속에서
남성복 세계로 돌아온 트위드
런웨이 수놓은 트위드 소재
디올과 루이비통 등도 선보여
디올 맨
베르사체
조르조 아르마니
지난 몇 년간 패션계는 성별 구분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남성의 슈트를 빼 입은 여성들이 런웨이에 등장하는가 하면, 꽤나 보수적인 남성복 컬렉션에선 여성복의 특징을 담은 옷을 입은 남자 모델들이 런웨이를 오가기 시작했다. 사회적 정의나 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남성과 여성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젠더 플루이드’는 현재 패션계를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이며 문화가 됐다. 이 커다란 트렌드 속에서 건진 올해의 소재는 젠더 플루이드한 역사를 가진 ‘트위드’다.

양털로 직조한 직물인 트위드는 견고하고 방수성이 뛰어나 습하고 차가운 기후에서 유용한 소재다. 거친 듯 자유분방한 질감으로 장갑이나 외투 등에 쓰이며, 예로부터 사냥이나 낚시 같은 야외 활동에서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남성 클래식 스포츠웨어의 전유물이었던 트위드는 20세기 초반 샤넬을 대표하는 ‘트위드 슈트’를 기점으로 여성복의 세계로 유입되며 남성복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아니, 빼앗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짝이는 메탈릭 소재나 파스텔 컬러 실을 섞는 등 한층 여성스럽게 변모한 1950년대 트위드 피스들은 단아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일컫는 레이디라이크 룩을 대표하는 아이템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었으니까. 이후 트위드는 얇고 부드러운 소재로 거듭나며 스커트나 드레스 등 다양한 형태로 제작됐다. 질감과 패턴이 독특하고, 계절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자극하며 럭셔리 여성복의 주된 소재로 사랑받아 왔다. 그런 트위드가 다시 남성복 세계로 돌아온 건 2024년이 되어서다.

이번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코트와 재킷, 팬츠, 쇼츠, 슈즈, 백 가릴 것 없이 트위드 소재를 활용한 피스들이 대거 등장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가 이끄는 디올 맨은 트위드 소재의 재킷과 슬리브리스 톱, 팬츠, 로퍼 등을 공개하며 트위드를 남성들의 옷장으로 이끄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루이비통은 또 어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퍼렐 윌리엄스는 그의 첫 번째 컬렉션에서 트위드 소재와 하우스의 상징인 ‘다무플라주’(루이비통의 다미에 패턴과 카무플라주를 조합한 패턴)를 접목한 셋업을 선보이며 트렌드를 선도했다. 큼지막한 꽃 아플리케를 장식한 아미리의 로맨틱한 트위드 셋업은 남자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따라 입고 싶게 만들 정도였다. 디스퀘어드2와 더블렛은 보풀이 일어난 빈티지한 색감의 트위드 재킷과 쇼츠들로 좀 더 힙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고전적인 남성복 슈트 스타일링에 트위드 소재를 접목한 베르사체도 있다. 조르조 아르마니는 아예 트위드 직물의 짜임을 프린트한 재킷, 팬츠, 스카프, 슈즈 등의 피스들을 곳곳에 배치해 눈길을 끌었다.

트위드 소재가 이룬 런웨이 물결은 거리에서도 넘치게 목격된다.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샤넬 패션쇼에서 배우 박서준은 화이트와 블루, 네이비 컬러가 조화로운 트위드 재킷에 브로치를 달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트위드 재킷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국내 아티스트 지드래곤은 오랜 기간 샤넬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화보나 공식 석상을 비롯한 일상에서도 다양한 색상과 스타일의 트위드 재킷을 입고 종종 등장한다. 트위드 재킷에 볼드한 액세서리를 조합해 자신만의 내공을 살린 트위드 룩을 잘 보여준 예다.

이 외에도 래퍼 켄드릭 라마, 저스틴 비버, 어셔 등 평소 남성미를 강조해 온 해외 아티스트들도 트위드 재킷 룩을 선보이며 트렌드에 편승하고 나섰다. 트위드 재킷이 꼭 격식을 갖춰 입어야만 하는 옷은 아니다. 핑크 컬러의 트위드 재킷에 무심하게 선글라스와 볼캡을 쓴 퍼렐 윌리엄스가 모범으로 2024년식 힙스터 패션을 연출할 수 있다.

소재는 쓰임에 따라 그 성격이 달라진다. 트위드가 과거 남성복의 일부였던 이유는 거친 환경에 적합한 소재였기 때문이다. 직물 기술의 발달과 디자인의 발전으로 얇고 부드러워진 트위드는 화려한 질감으로 여성복에 차용됐고, 성별의 벽이 허물어진 지금은 남녀 불문 누구에게나 적합한 소재가 됐다. 아직 트위드가 부담스럽다면 액세서리로 시작해봐도 좋겠다. 이번 시즌 선택의 폭이 넓어졌으니 이제는 나만의 트위드 스타일을 찾으면 될 일이다.

안미은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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