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맛과 섬] [181] 여수 아귀탕
“아귀탕 한 그릇 주세요.”
이렇게 자신 있게 1인분을 주문할 수 있는 식당을 만나면 행복하다. 나 홀로 여행은 늘어나지만, 나 홀로 현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 하물며 맛까지 좋다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식당을 찾아내고서도 주인 눈치를 보기 일쑤다. 그래서 아예 일행이 곧 온다며 2인분을 시키는 일도 적잖다. 1인분을 주문했는데 아귀살이 푸짐하다.
어민들은 봄철에 산란을 위해 연안으로 올라오는 아귀를 그물을 놓아 잡는다. 여수에서는 전날 그물을 쳐 두었다가 다음날 새벽에 걷어 온다. 그렇게 잡은 아귀는 여수 중앙시장에서 경매가 이루어진다. 중앙시장은 선어 경매로 유명한 곳이다. 철에 따라 민어, 병어, 삼치 경매가 이뤄진다. 아귀는 겨울철에 유독 좋은 자리를 차지한다. 여수, 순천, 광양은 물론 광주에서도 아귀 음식을 한다는 식당 주인들은 이곳을 즐겨 찾는다.
아귀는 자망 그물을 이용해 잡는다. 지금은 질기고 튼튼한 나일론 그물을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쉬 끊어지는 면사그물이었다. 매년 새 그물을 준비해야 했다. 그물 한 폭을 마련하려면 시간과 노력은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런 그물로 민어나 조기 등 고급 생선을 잡아야 수지가 맞았다. 그런데 아귀나 물메기가 걸려 올라오면 선원들 입장에서 화가 날 일이다. 그 당시에는 꽃게도 그물을 훼손하는 불청객이었다. 돈이 되지 않는 생선을 바다에 던졌다. 아귀가 물텀벙이라는 명예롭지 않은 별명을 얻은 이유다. 어쨌든 값이 나가는 귀한 생선은 아니었다.
이제는 몸값이 다르다. 마산 아귀찜이 만든 나비효과일 수 있다. 중앙시장 위판장을 가득 채운 아귀를 두고 경매인들 눈치와 손가락이 분주하다. 어장이 가깝고, 시장이 지척이니 인근 식당에서 내놓은 상차림은 말할 것도 없이 만족스럽다.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음식을 강조하는 슬로푸드에서 주목하는 것이 ‘푸드 마일’이다. 식재료가 생산되는 곳에서 소비되는 곳까지 거리를 말한다. 그 거리가 짧을수록 지역을 살리고 어민을 살리는 것이다. 여수 중앙시장 옆에서 아귀탕을 찾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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