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동지가 反中 동맹 깰 것”… 중국, 은근한 기대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4. 3.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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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바이든·트럼프 중 누굴 선호?

“둥왕(懂王·뭐든 아는 체하는 사람)은 중국이 미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발전하도록 도와준 분입니다.”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팔로어 190만을 거느린 중국의 애국주의 논객 선이(沈逸) 상하이 푸단대 국제관계학 교수가 최근 올린 글이다. ‘둥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별명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자신을 코로나 전문가로 지칭하는 등 각종 현안마다 빼놓지 않고 아는 체를 하는 ‘왕(대통령)’이란 뜻인데, 중국에선 트럼프를 일컫는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11월 미국 대선의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트럼프가 확정된 가운데 트럼프가 조 바이든 대통령(민주당)에게 승리해 4년 만에 재집권하는 시나리오가 중국에 결코 나쁘지 않다는 주장이 중국에서 힘을 얻고 있다. 임기 내내 중국과의 거친 무역 분쟁을 주도했던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돌아오면 대(對)중국 경제 통상 압박은 심화되겠지만, ‘미국 우선주의’ 회귀로 미국을 구심점으로 하는 서방 동맹이 약화되면서 중국이 국제 무대에서 숨 쉴 공간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 고문인 상바이촨 대외경제무역대 교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가 바이든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한) 반중(反中) 압박을 돌파할 기회를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중국 내 ‘트럼프 대망론’을 말해주는 키워드는 트럼프의 또 다른 별명인 ‘촨젠궈 동지’다. 트럼프의 중국어 이름인 촨푸(川普)의 첫 글자 촨(川) 뒤에 ‘나라를 일으키다’라는 뜻의 ‘젠궈(建国·건국)’를 붙였다. 트럼프가 촉발한 미·중 무역 전쟁으로 중국이 오히려 자생력을 키우고 국제적으로 부상했다는 의미다.

트럼프의 당선을 기원하는 중국 내 이 같은 여론은 트럼프의 반중 행보를 보면 모순적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최근 각종 인터뷰에서 집권 시 중국을 향해 ‘관세 폭탄’을 쏟아내겠다는 속내를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다. 지난 4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재집권 시 대(對)중국 관세율 60% 적용을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그 이상일 수 있다”고도 답했다.

그럼에도 중국 내에서 ‘트럼프 대망론’이 일고 있는 것은, 그의 백악관 복귀로 미국의 국제사회 영향력이 축소될 것이라는 셈법 때문이다. 미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근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의 방위비 분담 증대 등을 요구하며 미국과 유럽의 안보·경제 공조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CNN은 트럼프의 재집권은 미국과 동맹국들이 단결해 중·러에 맞서는 지금의 지정학적 구도를 뒤집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트럼프에게서 강력한 ‘대만 수호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는 점도 중국이 ‘트럼프 2기’를 꺼리지 않는 요소로 꼽힌다. 트럼프 집권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은 회고록에서 “트럼프가 대만에 대한 (미국의) 무기 판매에 대해 투덜거렸다”고 썼다. 실제로 트럼프는 과거 대만에 대해 “미국에서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갔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트럼프 재집권을 기대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중국 내부에서는 바이든의 재선을 경계하는 기류도 뚜렷해지고 있다. 바이든은 2021년 취임 후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미국 기술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반도체 수출 규제와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 지원법 제정으로 탈중국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의 안보 협력체)와 오커스(미국·영국 호주의 안보 협력체),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 등의 다자 협력체를 통해 중국 견제의 틀을 다지며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운신 폭을 더욱 좁혔다. 중국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의 ‘둥왕’과 대조되는 ‘수이왕(睡王·수면왕)’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트럼프보다 중국에 더 공격적인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다만 바이든 행정부와 확연히 대비되는 트럼프의 즉흥적이고 불확실한 통치 스타일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정부 수뇌부는 트럼프 2기 출범 시 백악관에 대거 합류할 이른바 ‘이너 서클’에 강경 반중 인사들이 대거 포진돼 있는 상황을 매우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재집권 시 무역·통상 부문 중책을 맡을 것으로 유력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USTR 대표는 지난해 6월 출간한 ‘공짜 무역은 없다(No Trade Is Free)’에서 고율 관세와 무역 장벽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중국은 미국과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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