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미각을 깨우는 ‘봄의 전령’

정연주 푸드 에디터·요리책 전문 번역가 2024. 3.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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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석하게 마른 나뭇가지도 그대로이고 걸치는 옷도 눈에 띄게 가벼워지지 않았지만 우리 몸은 알고 있다. 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계절성 비염으로 연신 재채기를 하고 입맛이 꺼끌꺼끌해지는 초봄이다. 아직 사람들은 코트를 입고 다니지만 목련 꽃눈은 점점 커지고, 시장에는 봄나물이 나오기 시작한다.

책 ‘야생의 식탁’에서 1년간 야생에서 채취한 식재료만으로 살아간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 모 와일드는 “겨울에 준비도 없이 야생식을 시작한다는 건 힘든 도전이었다”고 말한다. 원래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면 인간은 한 가지 식단을 고수하기 어렵다. 여름에는 생선과 채소·과일로 신선한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겨울이 되면 말려서 보존한 식재료와 함께 탄수화물이 주가 되는 식단으로 바꿔야 살아갈 수 있다.

24절기에 따른 우리나라 전통 음식에는 계절 변화에 맞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예컨대 말려서 유통기한을 늘리고 비타민 등 영양소를 보존한 묵은 나물은 겨우내 귀한 식량이 된다. 정월 대보름에 귀밝이술과 함께 묵은 나물을 털어내고 나면 슬슬 나무에 수액이 차오르고 새순이 돋는다. 그와 함께 우리 몸도 새로운 비타민을 필요로 하기 시작한다. 따뜻해진 기온에 밀려오는 춘곤증과 잃어버린 입맛을 극복하는 데는 쌉싸래한 맛과 묵은 나물에는 부족한 새로운 영양분을 갖춘 봄나물이 제격이다.

두릅, 화살나무순, 엄나무순, 참죽나무순 등은 아직 만물이 소생하기 전인 나뭇가지 끝에서 돋아나는 새순이다. 여린 싹만 꺾어 독소를 제거하고 먹는 고비와 머위, 원추리도 빼놓을 수 없다. 이제는 일년 내내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아스파라거스도 사실 초봄부터가 제철이다. 겨우내 바짝 마른 빈 땅에서 초록색 싹이 밀고 올라오며 봄을 알리는 전령으로 불리기도 한다. 보존 식품이 지겨워질 무렵 발끝에서 발견한 초록색 새순은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반가운 존재다. 어쩌면 지속 가능한 식단이란 멀리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채식의 즐거움과 제철의 소중함을 알리는 봄나물을 챙겨 먹는 것이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는 인간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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