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 무릎 꿇고 호흡 집중… 남명·퇴계·율곡도 명상했다

김한수 기자 2024. 3.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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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찾는 사람들]
유교 명상법 ‘정좌’ 연구 손병욱 경상대 명예교수
경상국립대 남명학관 명상실에서 손병욱 명예교수가 장궤 자세를 잡았다. 손 교수는 "옛 선비들은 정좌 수련으로 마음에 '도리가 깃들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손 교수 뒤로 보이는 그림은 남명 조식 선생이 그린 '신명사도'. /김동환 기자

“유교에도 명상법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정좌(靜坐) 수련이라는 마음 공부법입니다. 남명(조식), 퇴계(이황), 율곡(이이) 선생 등 조선 시대 선비들은 거의 정좌 수련을 했습니다.”

지난주 경남 진주시 경상국립대에서 만난 손병욱(70) 윤리교육과 명예교수는 ‘정좌 수련’을 이렇게 소개했다. 그를 만난 곳은 경상대 캠퍼스 내 남명학관 1층의 명상실. 2001년 남명학관 개관 때 함께 문을 연 명상실 문패엔 ‘남명정신함양실’이란 글씨가 함께 적혀 있어 남명 정신과 명상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손 교수는 35년 전 퇴계 언행록에서 ‘정좌’를 처음 접한 후 국내외에 정좌 수련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책을 내는 한편 학생들과 이 명상실에서 정좌 수련을 실습했다고 한다. 5년 전 퇴직 후에도 자주 명상실을 찾는다는 그에게 정좌 수련에 대해 들었다.

경상국립대 남명학관 1층의 명상실. '남명정신함양실'이라고 적혀 있다. /김한수 기자

-유교와 명상은 얼핏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현재는 사실상 맥이 끊어졌으니까요. 정좌 수련은 중국 송대 성리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송 시대 선불교의 수행법을 유교적 입장에서 수용해 활용한 면도 있을 겁니다. 주자(朱子)도 불교 이론에 능통한 분이 아니었습니까. 성리학을 받아들인 조선의 선비들은 우리가 알 만한 분은 거의 정좌 수련을 했습니다. 마음을 모으고 의식을 각성시켜 집중력과 의지력을 키우려는 것이었지요. 그 힘으로 경전을 공부하여 도리와 의리를 탐구하고 이러한 지식을 현실에서 실천했지요. 이것을 가리켜 경(敬)이라고 하는데, 그 출발이 정좌였습니다.”

-정좌 수련은 어떻게 합니까.

“사진이나 그림이 없어 정확한 자세는 알 수 없지만 문헌에 염슬위좌(斂膝危坐)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무릎을 모으고 꿇어앉아 허리를 곧추 세우는 자세입니다. 저는 무릎 꿇고 엉덩이를 떼고 다리와 허리를 꼿꼿하게 하는 장궤(長跪) 자세와 보통 꿇어앉는 자세를 번갈아 수련합니다. 이렇게 꿇어앉아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들숨과 날숨의 수를 세는 수식관(數息觀)으로 호흡 명상을 합니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좌복(방석) 위에서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입에 침이 고이는데, 이를 삼키면 집중력이 길러집니다. 옛 선비들은 아침, 저녁과 틈나는 대로 정좌했다고 합니다.”

-정좌 수련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제 고향은 경남 산청 남사 예담촌입니다. 구한말 대유학자인 면우(俛宇) 곽종석(1846~1919) 선생이 태어나 자란 마을이고, 옛 선비 문화를 간직한 곳입니다. 면우 선생은 ‘경(敬)은 정좌에서 시작된다(敬自靜坐始)’는 말씀을 남겼지만 정작 이곳에서 정좌 수련을 하는 분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정좌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퇴계 선생의 언행록입니다. 퇴계 선생은 제자들에게 수시로 ‘정좌해라’ ‘정좌해라’ 하고 권합니다. 정좌수련을 하면 ‘도리(道理)가 깃들 장소가 생긴다(道理方有湊泊處)’는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해 도리가 깃들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좌 수련을 권한 것이지요. 경상대에 부임하고 남명 선생에 대해 연구하며 쓴 첫 논문이 남명 선생의 정좌 수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이 그린 '신명사도'. 경상대 남명학관 명상실에도 이 그림이 걸려 있다. /김동환 기자

-남명 선생은 정좌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습니까.

“‘칼 찬 선비’로 잘 알려진 남명 선생은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허리띠에 달고 다닐 정도로 항상 마음 챙김에 힘썼습니다. 이 명상실 벽에 걸린 그림은 그가 그린 ‘신명사도(神明舍圖)’입니다. ‘마음(신명)의 집(사)’을 표현한 그림이란 뜻이지요. 그림은 성(城) 모양이지요. 내 마음 지키기를, 죽음을 각오한 임금이 외적에게서 도성(都城) 지키듯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을 둘러싸고 이(耳)·목(目)·구(口) 세 관문이 그려져 있지요. 유혹의 통로가 귀, 눈, 입이기 때문입니다. 남명 선생은 강렬한 위기의식을 갖고 마음을 잘 지키기 위한 기초로서 정좌 수련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특히 ‘심식상고(心息相顧)’라 하여 정좌 수련 중에서도 수식관 곧 호흡 명상을 중요시했지요.”

-불교의 좌선 수행과 유교의 정좌 수련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공통점은 ‘지금, 여기의 삶’입니다. 내 몸이 있는 ‘지금, 여기’에 내 마음도 또랑또랑한 상태로 있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나 미래, 저기, 거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인 것이죠. 차이점이라면 불교 좌선 수행이 바로 깨달음의 경지로 향하는 것이라면, 정좌 수련은 깨달음이 아니라 실천으로 향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음을 집중해 공부하고 진리를 연구해 실천한다는 것이지요.”

손 교수는 “일제강점기 성리학의 쇠퇴와 함께 정좌 수련도 단절된 것 같다”며 “최근 향교, 서원과 유교 관련 전문 수련 단체가 활성화되는 추세인데, 이런 단체에서 정좌 수련을 교육한다면 청소년 인성 교육 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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