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엑스레이] [11] 우리는 메시지에 중독됐다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영향이다. 마산 출신 이정악씨는 KBS ‘동물의 왕국’을 좋아했다. “할매 동물 나온다!” 이 한마디면 외할머니는 티브이 앞에 앉아 “하이고 신기하다”를 연신 중얼거렸다. 그녀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역시 그림의 떡이 더 맛나 보이게 마련이다.
자연 다큐멘터리는 BBC가 잘 만든다. 2006년 공개한 ‘살아있는 지구’는 압도적 경험이었다. 제작진은 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을 거라 상상조차 못 했던 지구 구석구석을 담아냈다. 지구를 구석구석 훑어 식민지로 만들었던 제국의 후손다운 솜씨다. ‘살아있는 지구’는 2016년과 2023년 후속 편을 제작했다. DVD 구입을 망설이고 있다면 무조건 사시라. 왜 이 시리즈를 ‘사야 하는 지구’라 부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지구’ 이후 비슷한 다큐멘터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넷플릭스 ‘우리의 지구’는 BBC를 벤치마킹한 작품이다. 동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경이 여기서도 구수한 목소리로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걸 보다가 기분이 묘해졌다. 메시지가 많았다. 지나치게 많았다. ‘네가 보고 있는 동물은 곧 멸종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죄책감을 건드리며 경종을 울려댔다. ‘살아있는 지구 3′ 역시 1편과는 달리 직접적 메시지가 많아졌다.
메시지 중독 시대다. 요즘은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도 명확한 메시지를 주어야 한다는 집단적 사명감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대중문화마저 모두를 너무 가르치려 든다. 최근에는 데이비드 애튼버러경도 이렇게 말했다. “(다큐멘터리의) 환경에 대한 지나친 경종 울리기는 시청자들을 오히려 질리게 할 겁니다.”
‘살아있는 지구’의 가장 감동적인 주인공은 최초로 근접 촬영한 히말라야 눈표범이다. 눈표범은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와는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 아름다운 존재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메시지다. 떠들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은 적다. 선조들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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