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55> 세상 뜨기 하루 전 지었다는 조술도의 봄 이야기 시

조해훈 시인·고전인문학자 2024. 3.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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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창 열고 따스한 햇살 향하니(小牕開向暖·소창개향난)/ 오늘에야 비로소 봄이 온 걸 알았네.

/ 대낮이라 적막한데 벌 소리 요란하고(午寂蠭聲閙·오적봉성뇨)/ 하늘은 맑아 새조차 더디게 날아가네.

유치명이 지은 행장에 보면 그가 75세를 맞은 봄날 세상을 뜨기 하루 전 위 시를 지었다.

작은 창을 여니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봄이 왔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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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리 끼고 노래하는 어린 계집아이들

- 攜筐歌小女·휴광가소녀

작은 창 열고 따스한 햇살 향하니(小牕開向暖·소창개향난)/ 오늘에야 비로소 봄이 온 걸 알았네.(今日覺春時·금일각춘시)/ 대낮이라 적막한데 벌 소리 요란하고(午寂蠭聲閙·오적봉성뇨)/ 하늘은 맑아 새조차 더디게 날아가네.(天晴鳥影遲·천청조영지)/ 광주리 끼고 노래하는 어린 여자아이들(攜筐歌小女·휴광가소녀)/ 버들가지 꺾어 흩뜨리는 시골 아이들.(折柳散村兒·절류산촌아)/ 이런 일 보는 것이 참된 즐거움이구나(卽事成眞樂·즉사성진락)/ 말없이 우두커니 턱을 괴고 바라보네.(無言自拄頣·무언자주신)

위 시는 영남의 선비 조술도(趙述道·1729~1803)의 작품으로, 제목은 따로 없다. 그의 문집 ‘만곡집(晩谷集)’에 미처 실리지 못하고, 유치명(柳致明·1771~1861)이 그를 위해 지은 행장에 있다. ‘만곡집’은 그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간행돼 유치명이 지은 행장 및 정종로 등 여러 선비가 지은 제문 등도 못 실렸다.

1736년 서원이 무분별하게 많이 생기는 것을 반대하는 상소를 했다가 노론의 탄핵으로 이듬해 제주도에 귀양 가던 중 전라도 강진에서 죽은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1658~1737)의 손자가 조술도이다. 그런 연유로 조술도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형제들과 학문에만 전념하며 초야에 묻혀 지냈다. 유치명이 지은 행장에 보면 그가 75세를 맞은 봄날 세상을 뜨기 하루 전 위 시를 지었다.

몸이 편찮아 봄이 온 줄도 모르고 방에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작은 창을 여니 따스한 햇살이 들어와 봄이 왔음을 알았다. 대낮이어서 적막한데 뜰에 벌 소리가 요란하다. 하늘이 맑아 새조차 더디 난다는 표현에서 시상이 농익었음을 알 수 있다. 광주리 옆에 끼고 나물 캐고, 버들가지 꺾으며 아이들은 논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인은 이런 풍광을 보는 즐거움이 참으로 크다. 그러한 광경을 턱 괴고 말없이 흐뭇하게 바라본다. 봄날 시골 풍경을 읊었지만, 그 이면에는 이름 없는 한 선비의 진한 아픔이 느껴진다.

목압서사가 있는 화개골에서 가끔 쑥을 캐시는 할머니들을 본다. 화개골은 계집아이들과 사내아이들이 없다 뿐이지 위 시에 나오는 풍광과 별반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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