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4> 봄나물 재발견
- 냉이 달래 쑥 돌나물 등 말고도
- 광대의 주름모자 닮은 광대나물
- 이름 민망해도 꽃 예쁜 개불알풀
- 논둑 밭둑에 지천으로 피는 별꽃
- 한국전 기근에 배 채워준 망초 등
- 잡초 취급받는 귀한 봄나물 많아
- 데친 뒤 꽉짜서 들기름 조물조물
- 초고추장·액젓 등 양념 취향대로
- 튀김이나 전도 향 즐기기에 좋아
봄이 되면 생동하는 봄의 기운 따라, 앞다투어 움트는 봄나물이 많다. 냉이 달래 돌나물이 그렇고, 쑥이나 쑥부쟁이 씀바귀도 그렇고, 요즘은 민들레 엉겅퀴도 봄나물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얼마 전 봄나물 취재를 위해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 들렀다. 봄나물이 슬슬 나오기 시작할 때라 이즈음의 봄나물을 일별하기 위해서였다. 시천면의 어느 ‘약초 나물 뷔페’에서 돌아본 우리 산하의 나물은 다양하고 방대했다.
30여 종의 나물을 된장에 무쳐내고 장아찌로 절여내고 좋은 기름에 튀겨내 먹게끔 준비해 놓았다. 그중에서도 우리 산야에 지천이지만 무심히 지나쳤던, 그냥 잡초이거니, 풀꽃이거니, 독초이거니 했던 식물의 새순으로도 나물로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
▮천덕꾸러기이자 빈궁기 귀한 반찬
산이나 들녘, 논둑이나 밭둑, 시골집 주변이나 길섶에 드넓게 자생하는 ‘광대나물‘ 개불알풀’ ‘별꽃’ 개망초’ 등이 대표적이다. 개망초나 광대나물은 논밭을 망치는 잡초로 농부들의 노고를 요구하는 천덕꾸러기이기도 하고, 개불알풀이나 별꽃은 봄이 오는 들녘에 초봄을 알리는 작고 앙증맞은 야생화로 알려졌다. 이 모두는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의 나물로 조리해 먹던 풀꽃 중의 하나였다.
우선 광대나물. 광대나물은 꽃을 꽂은 광대의 주름 모자와 닮아 광대나물로 불린다. 묵정밭이나 오래된 집 주위에 흔히 볼 수 있는 풀꽃이다. 붉은빛이 도는 자주색 꽃이 피는데, 광대 옷의 목 주변 넓은 카라처럼 생긴 이파리에서 여러 송이의 꽃이 두루 핀다.
코를 파면 나오는 코딱지 같다고 해서 ‘코딱지 나물’로 부르기도 하고, 잎의 모양이 장구 모양이라 경상도에서는 ‘장구 풀’이라고도 불린다. 초봄에 피기 때문에 꽃말이 ‘봄맞이’다. 광대나물은 끓는 물에 나물을 1~2분 데친다. 어린 순을 너무 데치면 물러지기에 바로 건져내 찬물에 씻어 물기를 빼야 한다. 물기 뺀 광대나물에 된장, 다진 마늘, 들기름을 넣고 버무리면 광대나물 무침이다. 광대나물 무침은 고소하면서도 약간 알싸한 맛이 돈다. 식감은 부드러우면서도 아삭아삭한 느낌이다. 봄철 입맛 돌리기에 아주 좋겠다. 부침가루로 전을 부쳐 먹어도 되고 된장국으로 끓여 먹어도 맛있단다.
개불알풀은 엄동의 땅에서 맨 먼저 꽃을 피우는 풀꽃이다. 찬바람 속에서도 고양이 발톱만 한 보랏빛 작은 꽃들을 지천으로 피워 올린다. 그래서 반가운 손님 맞듯 봄이 오는 소식을 전한다고 ‘봄까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앙증맞고 예쁜 꽃을 피우는 이 녀석에게 왜 이다지도 민망한 이름이 붙었을까? 그 이유는 꽃이 지고 나면 꽃자루에 열매가 열리는데, 그 모양이 수컷 개의 생식기를 너무나 닮았기에 그렇다. 그래서 요즘은 ‘봄까치꽃’으로 순화해서 부르자는 이가 많다.
끓는 소금물에 살짝 데쳐서 된장과 다진 마늘 등을 넣고 무쳐서 먹거나 멸치액젓에 고춧가루 마늘 청양초 등을 넣어 짭조름하게 먹는다. 따뜻한 밥에 척 걸쳐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단다.
별꽃도 논둑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이다. 냉이나 민들레처럼 지천으로 피고 지는 풀꽃 중의 하나. 약성이 강해 동서양을 막론하고 식용이나 약용으로 널리 쓰여왔다. 흉년에는 밥 지을 때 함께 넣어 밥을 늘려 먹던 식재료이기도 하다. 전라도에서는 ‘곰밤부리 나물’이라 하여 이른 봄철 즐겨 먹었단다. 3월 초순에 나는 어린 잎은 겉절이나 샐러드로 먹으면 풋풋한 풀냄새와 봄내음을 즐길 수 있다. 맛은 새콤하면서도 담담하다. 살짝 데쳐서 된장 초고추장 초간장 등에 무쳐 먹기도 한다. 된장국에 넣어 끓여 먹으면 냉잇국만큼이나 봄의 향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단다.
망초는 어느 곳이든 빈터만 있으면 싹을 틔워 무성하게 군락을 이루는 풀꽃이다. 봄이면 한 줄기로 길게 자라 달걀 프라이 같은 꽃을 피운다. 일제강점기 일제가 조선에 철도를 부설할 당시 철도 침목에 섞여 들어온 외래식물이다. 이 때문에 일제가 나라를 멸망케 하려고 퍼트린 잡초라며 ‘망초(亡草)’ ‘망국초(亡國草)’ 개망초로 불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 망초는 한국전쟁 이후 기근 속 서민이 끼니를 속이기 위해 무쳐 먹던 나물이기도 했다. 종전 이후에도 한참 동안을 춘궁기에는 이 망초로 나물과 국거리로 했단다. 요즘도 시골의 노인들은 찬이 변변찮을 때 망초를 뜯어 나물로 해 먹는단다. 망초를 ‘담배 나물’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치 담배 냄새와 비슷한 향이 나서이다. 옛 사람들은 이 망초를 데쳐서 오랫동안 우려내도 담배 냄새가 쉬 빠지지 않았다며 그 시절을 기억하기도 한다.
광대나물 개불알풀 별꽃 망초…. 이들 나물은 된장이나 초고추장, 액젓과 조선간장 등 각자의 취향에 맞게 어떻게 무쳐 먹어도 맛있다. 단, 간과 양념은 세지 않도록 해서 먹어야 한다. 나물마다의 고유한 향과 맛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엄동 뚫고 싹 틔운 건강한 나물들
이 나물들을 들큰한 들기름에 조물조물 무쳐 밥에 얹어 먹어도 좋고 비벼 먹어도 좋다. 된장국으로 끓여 먹으면 구수하면서도 향긋한 봄나물의 향취를 느낄 수도 있다. 엄동 뚫고 싹을 틔워 생명의 기운을 가득 품고 있는 이들이기에 어떻게 먹든 건강한 음식일 수밖에 없겠다.
또 새 봄이 왔다. 우리의 선조들은 봄이면 산과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오르는 풀꽃조차 허투루 여기지 않고 다양하게 조리해 먹었다. 제철에 흔하게 나는 풀꽃들로 겨우내 움츠러든 몸을 깨우고 또 새로운 한 해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여러 이유로 우리의 나물 식재료들이 들판의 흔한 잡풀로 여겨지고 있다. 한때는 우리 주변으로 지천으로 널려있는 나물들. 이제는 외면하면서 잊히고, 잊힘으로써 잡초가 되거나 이름 모를 풀꽃이 되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힌 후 새로운 것을 알아야 제대로 된 삶이 담보된다. 음식이나 음식문화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의 먹거리도 우리 삶의 기록이다. 인류의 음식 섭생은 시대가 변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과거와 현재를 함께 취해야만 되는 또 하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