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 시인 박목월, 역사적 상흔 직시한 작품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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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때/엄마 아빠가 다 돌아가신/슈샨보이./길모퉁이의 구두를 닦는 슈샨·보이.'
시인 박목월(1915∼1978)이 1970년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표 시 '슈샨보오이'의 일부다.
박목월유작품발간위원회는 1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슈샨보오이'를 비롯한 박목월의 미발표 시 166편을 공개했다.
이 작품들은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국문학과 명예교수(85)가 자택에 소장한 공책 62권, 경북 경주시 동리목월문학관에 보관 중인 공책 18권에 담겨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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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70년대 쓴 작품 노트 80권… 朴 시인 연구자 설득에 유족이 발표
해방의 기쁨-전쟁의 참혹함 등 다뤄
“문학사 다시 써야… 전집 발간 예정”
시인 박목월(1915∼1978)이 1970년대 쓴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표 시 ‘슈샨보오이’의 일부다. 이 시에선 전쟁의 참혹함을 딛고 살아가는 어린 구두닦이 슈샤인 보이(shoeshine boy)를 바라보는 시인의 애처로운 시선이 느껴진다. ‘아아 눈이 동그랗게 아름다운 그애 슈샨 보이/학교 길에 내일도 만날가 그애 슈샨보이.’라며 참혹함을 서정적인 어조로 그리기도 한다. 박목월 특유의 서정성을 담으면서도 역사적 상흔을 직시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청록파’의 대표주자였던 그의 작품세계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시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책은 박목월의 아내 유익순 여사(1920∼1997)가 보관했다. 유 여사는 6·25전쟁 당시 북한군 치하의 서울에 남아 있을 때도 천장과 지붕에 남편의 공책을 숨겼다. 이후 박 교수가 보관하다 연구자들의 설득으로 시인 사후 46년 만에 공개됐다. 박 교수는 “공책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오랫동안 보자기에 싸인 채 보관돼 있었다”며 “오랜 시간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후배와 제자들의 도움으로 공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목월은 조지훈(1920∼1968), 박두진(1916∼1998)과 더불어 청록파로 불렸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문학을 사회변혁의 도구로 활용하려는 사회주의 문학에 반발해 한국 시 문학의 순수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강나루 건너서/밀밭 길을//구름에 달 가듯이/가는 나그네’(시 ‘나그네’ 중)처럼 민요가락과 아름다운 자연을 어울리는 시구로 순수 서정시를 주로 썼다.
이날 공개된 작품들 중 눈길이 가는 건 역사적 상흔을 다룬 시들이다. 박목월은 해방 직후 쓴 것으로 추정되는 시 ‘무제_해방’에서 ‘어두운 굴레를 쓰는 일이 없으리라/두 번 다시는/스스로 목이 메어/영원히 빛나라.’라며 해방의 기쁨을 직설적으로 표출했다. 시 ‘결의의 노래’에선 ‘절절 끓는 핏줄을 가진 자라면/이 겨레의 핏줄을 가진 자라면/바다에서 산에서 또한 들에서/일어나고야 만다.’며 해방이 우리 민족에 가져올 희망을 노래했다. 박목월의 기존 작품들과 다른 결의 작품들이다.
근대화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도 발견됐다. ‘뻐스를 기다리는/기다리는 사람으로/줄을 이루었다’(시 ‘무제’ 중)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도시에서 삶의 피로를 그렸다. 이 외에 기독교 신앙, 가족, 사랑을 다룬 시들도 있다. 우정권 단국대 자유교양대 교수는 “박 시인의 문학사를 다시 써야 하지 않을까 한다.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향후 박 시인의 전집을 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이 자신의 미공개작이 세상에 나온 걸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짓궂은 질문에 박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뭐 하러 했노.’ 아버님이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아 겁도 납니다. 하지만 평생 시를 껴안고 살아온 아버님의 인생을 보여 드리고 싶어 미발표작 공개를 결정했습니다. 잘 읽어 주세요.”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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