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아일랜드 밸린그래스 마을의 교훈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가 잉태되던 18세기 후반이었다.
사회 일부 지도층은 기근이나 전쟁, 전염병 등을 통해 인구 증가를 억제해야 한다고 주창했다. 어처구니 없겠지만 그땐 그게 정설이었다. 그 주장의 한복판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있었다.
인구 증가는 해결이 불가능한 만큼 모든 빈곤과 질병, 범죄 등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층민들의 희생도 정당화됐다. 그 옛날 유럽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페스트가 다시 찾아들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끔찍하지만 말이다.
이 같은 이론이 그대로 적용된 현장이 나타났다. 아일랜드 밸린그래스 마을이었다. 소작농 76가구가 사는 마을을 영국군 연대 병력이 포위했고 순식간에 지옥으로 전락했다. 여자들과 아이들이 울부짖고 남자들은 항거했다. 하지만 주민 300여명은 가구도 건사하지 못한 채 거리로 내몰렸다. 아일랜드 대기근의 와중에 소작농들을 괴롭힌 강제 퇴거가 시작됐다.
주민들이 퇴거 당한 이유는 감자 흉작으로 소작료를 내지 못해서였다. 연간 수입 4파운드 이하인 소작농을 거느린 지주들이 빈민을 구제하는 구빈세를 부담해야 한다는 법규도 강제 퇴거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금을 내느니 차라리 소작농들을 몰아내고 고소득 작물을 재배하는 대농장을 만들겠다는 게 지주들의 선택이었다. 이 때문에 30만여명이 고향에서 영원히 쫓겨났다. 1846년 오늘의 일이다.
기근과 강제 퇴거도 과거사에 머물지 않는다. 지구촌 농업생산력은 인구 120억명을 먹여살릴 수 있지만 수많은 인류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질병 퇴치 노력과 자선은 비난받아야 할 행위라고 강조한 맬서스주의도 일부 학계에선 유효하다. 우리 사회는 178년 전 아일랜드 밸린그래스 마을 사태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까.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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