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읽기] 개나리색 옷을 입은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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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기저기, 심지어 반려견의 옷에도 찾아온다.
3월에 개나리색 옷을 입은 개를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바야흐로 봄이기 때문이다.
조각가 장세일(1981년생)이 제작한 개, 그레이하운드도 개나리색 셔츠를 입었다.
그러니 개나리색을 입건 진달래색을 입건 개는 별 느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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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기저기, 심지어 반려견의 옷에도 찾아온다. 3월에 개나리색 옷을 입은 개를 마을에서 만날 수 있는 건 바야흐로 봄이기 때문이다. 조각가 장세일(1981년생)이 제작한 개, 그레이하운드도 개나리색 셔츠를 입었다. 장세일은 동물을 단순화한 형태로 만든다. 때론 동물 모습에 빗대어 주변 환경에 맞게 진화하는 현대인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인천공항을 갈 때 영종대교휴게소에 세워진 하늘색 큰 곰을 옆눈으로 보며 지나가게 되는데, 장세일의 작품이다. 그는 동물 고유의 기본 형태를 바탕으로 하되, 표면은 삼각·사각·오각의 도형을 퍼즐처럼 이어 붙여 매끈한 다면의 입체로 탄생시킨다.
‘표준동물-앉아!’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개는 네모나게 각진 인간 세상에 어울리도록 표준화된 모양이다. 각진 환경을 노랫말로 삼은 ‘네모의 꿈’이라는 대중가요가 있다. 네모난 건물에 들어서서 네모난 엘리베이터를 타면 네모난 책상과 네모난 모니터가 우리를 맞는다. 몸에는 각진 부위가 하나도 없는데 주변은 온통 네모뿐이니 개도 사람도 점점 각을 지니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의 도시를 네모난 입체로 체험하게 하는 대표적인 공간은 아파트이다. 아파트의 첫인상은 네모라는 단위로 구성돼 있다는 것인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네모는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패턴이다. 자연이나 인간을 모방한 형태가 아니라 기계나 건물 그리고 차곡차곡 쌓아놓은 대량 공산품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창문이나 방 크기 등이 표준화돼 있어서 그것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을 틀 짓는다. 한 아파트의 505호와 805호를 비교해보라. 구성원들이 추구하는 바는 각각 다를지라도 그들이 누리는 생활환경에 큰 차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장세일의 작업 메모에도 네모진 규격에 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성격, 외모, 소유하는 대부분의 것을 규격에 맞게 다듬어간다. 반짝이고 화려한 색을 띠며 여기저기 반듯하게 정돈된 동물의 형태는 내가 말하고 싶은 적응의 모습이다.” 장세일의 개는 재래식으로 찌꺼기 밥을 먹여 키우던, 개 고유의 누린내를 지닌 잡종견이 아니라 사료를 먹이고 전용 샴푸로 목욕시킨 향긋한 개다. 인간과 함께 살기 위해 대부분의 본성을 버리도록 훈련받은 이 개는 견주의 세련된 미적 취향을 대변하며 아파트단지 내 사람들 사이에서 위협적이지 않게 조화를 이룬다.
개의 눈은 흑백에 가깝게 세상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러니 개나리색을 입건 진달래색을 입건 개는 별 느낌이 없을 것이다. 봄의 색을 보며 들뜨고 흥겨운 쪽은 개를 데리고 나온 사람이 아닐까.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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