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의사집단은 끝내 이권 카르텔로 남을 건가

조일훈 2024. 3. 13.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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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 확대 가로막는 의사들
거대 직역 카르텔 구축
투쟁방식, 민노총과 다를바 없어
의료 소비자 권리가 최우선
'의대 증원 2000명' 좌초땐
후속 의료개혁도 물거품
조일훈 논설실장

의사들은 지는 싸움을 하고 있다. 본인들만 모르는 것 같다. 의료 현장을 떠나는 자기 파괴적 투쟁 말고는 달리 대항 수단이 없다. 의사가 모자란다고 하는 판에 스스로 활동 의사 숫자를 줄이고 있다. 이런 어깃장이 없다. 의약분업, 원격의료, 의대 증원 등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정책이 나올 때마다 파업으로 맞서온 사람들이다. 그 폐해가 수십 년간 누적돼 이제 국민도 진력이 나고 있다. 의사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0년 펴낸 ‘한국경제 60년사’에도 필수의료 부족과 의료서비스의 지역별 불균등 문제가 적시돼 있다. 다른 선진국과의 인구 10만 명당 의사 수를 비교하는 수치가 소상하게 나열돼 있다.

의대 교수와 전공의의 길드(동업조합)적 연대는 의사 집단의 카르텔적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의대 교수들의 사직 결의를 ‘제자 사랑하는 순수의 발로’로 볼 순 없다. 이제 막 입학한 의대 신입생들의 수업 거부를 방치하는 스승들 아닌가. 학원 소요가 심했던 전두환 독재정권 치하의 강단도 이렇진 않았다.

모든 의사를 싸잡아 말할 순 없지만, 의료계에는 오랜 훈련과 직업적 경험을 통해 중세 길드식 생존법을 체화하고 전파하는 사람이 많다. 직역의 대체 불가성과 의료 시스템의 취약성을 능란하게 파고든다. 길드의 경쟁력은 정부 면허를 기반으로 한 배타적 독점력이었다. 이를 위해 도제 숫자를 통제하고 조합원 충원과 훈련에 대해 전권을 행사했다. 오늘날 의사단체들의 전형적 모습이다. 길드의 수습공은 도제라는 기술훈련 시스템에 따라 4~5년의 수련을 거쳐 숙련공이 되고 나중에 장인이 되는 길을 걸었다. 독일 보쉬 창업자 로베르트 보쉬, 오펠 창업자 아담 오펠이 그런 과정을 거쳐 자동차산업 기반을 닦았다. 이런 과정은 대학교-전공의-전문의로 이어지는 의사 양성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유서 깊은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대가 대부분 학생조합이나 교수조합으로 출발한 것도 길드적 유산이다. 당시 대학의 석사나 박사가 ‘master’와 ‘doctor’로 명명되고, 제조 장인과 의학박사가 그 명칭을 따라간 것은 모두 하나의 궤적이다.

길드는 산업혁명으로 등장한 거대 기업 조직에 밀려 해체되거나 특권을 상실한 형태의 순수 조합으로 돌아서야 했지만, 기업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대학들은 조합적 특성을 웬만큼 유지할 수 있었다. 의과대학이나 로스쿨을 나오지 않으면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없는 구조가 각국에 정착한 배경이다. 정부는 대학 교육을 기반으로 면허를 발급하고, 대학은 축적한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의료·법률서비스의 공급자 역할을 해 온 것이다.

카르텔은 불가피하게 단체주의적 속성을 지닌다. 그래서 쟁의와 투쟁이라는 노동조합 행태를 추종할 때가 많다. 병원에 복귀하는 전공의에 대한 사이버 공격은 파업 불참자에 대한 과거 화물연대의 쇠구슬 테러를 연상케 한다. 집단 사직서 제출과 사업장의 쇠사슬 점거 파업도 결코 다르지 않다. 그나마 화물연대는 “물류를 멈춰 세상을 바꾸자”고 했다. 의사들은 병원을 멈춰 무엇을 바꾸자고 할 것인가. 자신들이 민노총과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나.

면허발급권자인 정부는 결연하다. 이번에도 의사 카르텔에 밀리면 의대 증원보다 훨씬 중요한 개혁 과제들이 순식간에 동력을 잃을 것이다. 의사협회는 증원 규모 2000명에 대한 과학적·합리적 근거를 대라고 하지만 추계와 이익이 제각각인 상황에서 소모적 논란만 야기할 뿐이다. 대신, 단기 대규모 증원에 대한 부작용과 혼선은 온전히 정부가 책임질 일이다. 이렇게라도 시작하지 않으면 ‘의대 동결 20년’ 적폐의 흙 한 덩어리도 건드릴 수 없다. 의사들이 사전에 협의가 없었다고 강변하는 것은 실상 자신들과 합의해달라는 특권적 요구와 다를 바 없다. 응급실과 수술실의 지배력을 면허 권력과 오랜 세월 혼동해 온 탓일 게다.

길드의 치명적 약점은 생산력 독점에 급급한 나머지 소비자 편익과 시장 변화에 둔감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의사들을 향해 자꾸만 환자 곁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이유도 길드 조직의 수공업적 패망과 그에 따른 시민들의 피해가 뻔히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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