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떨려서 못 읽겠어요”…박목월이 숨겨둔 시 166편 공개한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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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시인은 1940년 9월 문예지 '문장'에 "북에는 소월, 남에는 목월"이라고 썼다.
"북에는 김소월이 있었거니 남에는 박목월이가 날 만하다." 후배시인 박목월(1915~1978)의 시엔 다른 시인에게선 발견되지 않는 섬세한 고심이 담겼다는 이유였다.
박목월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12일 서울 광화문 한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의 미발표 육필 원고 166편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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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박목월 미발표작 공개
1978년 작고후 46년 빛 못봐
400편 중 엄선해 166편 발굴
“시인생애 연구에 꼭 필요한 일”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시 ‘나그네’)라는 한 문장만으로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꼽히는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작이 대거 공개됐다. 박목월 시인의 장남인 박동규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12일 서울 광화문 한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아버지의 미발표 육필 원고 166편을 공개했다. 1936년부터 1970년대까지 집필된 박목월 시인의 작품이 세상에 처음 빛을 보게 됐다.
“사실 전 가슴이 떨려서 아버지 시를 잘 못 읽습니다. 아들이라 아버지 작품을 평가할 수도 없어요. 후배와 제자들 도움을 받아 총 400편 중에서 작품의 형태를 완전히 갖춘 것만 엄선한 결과물입니다.”
박목월 시인이 작고한 건 1978년, 이달 3월 24일은 그의 46주기다. 거의 반세기 만에 공개된 그의 노트엔 세월의 흔적을 거스르는 시인의 진솔한 마음이 고스란하다. 자연과 인간이 관계를 그려 자연파(청록파의 다른 이름)로 불렸던 박목월 시인은 미발표작에서도 자연을 예찬한다.
‘파도소리에 뜰이 흔들리는/ 그 뜰에 용설란’으로 시작해 ‘안개에 반쯤 풀리고/ 안개에 반쯤 살아나는 용설란’으로 끝나는 시 ‘용설란’은 객지에서 본 새로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을 담았다. 용설란은 난(蘭)의 종류인데, 박목월 시인은 한라산의 용설란을 보며 ‘어눌한 사투리로 가까스로 몸매를 빚다’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미발표작 ‘무제’에서 박목월 시인은 시 쓰기를 ‘측은한 소망’이라고 말한다. ‘참된 시인. 참된 시인이/ 되어보리라. 이 어리고 측은한/ 소망’이라고 적힌 시 ‘무제’에서 시인은 가엾고 불쌍한 글을 쓰는 일만이 시인을 진실되게 만든다고 노래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는 “시인의 마음의 세계를 잘 표현하고 있는 시로, 그의 육필 원고를 보면 내면을 응축시켜 완성된 상태로 발표한 것이 많다”고 강조했다.
박목월 시인의 미발표작이 출간되기까지는 굴곡이 적지 낳았다. 박목월 시인의 아내 유익순 여사는 남편이 습작하다 휴지통에 버린 메모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6.25전쟁 때는 천장 위에 숨겨놨고 이후 장농 밑에, 모기장 밑에 보자기로 싸서 쟁여놨던 작품들”이라고 박동규 교수는 회고했다.
누렇게 바란 페이지마다 박목월 시인 특유의 꼼꼼함이 베어나온다. 시어와 행·연을 바꿀 때마다 그는 육필로 다시 썼는데, 토씨 하나만 바꿔도 개작(改作) 과정을 모두 노트에 적어놨다. 박 교수는 “어떤 시는 발표하기 싫으셔서 안 내신 게 아닌가 싶어 이번 공개를 망설였던 것도 사실”이라며 “하지만 미발표작에 더 실험적인 작품도 많다. 한 시인의 생애를 살피는 데 아니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미발표작 공개는우정권 단국대 교수가 작년 4월 박동규 교수에게 노트 열람을 요청하면서 이뤄졌다. 이후 유성호 교수와 방민호 교수, 박덕규 단국대 명예교수, 전소영 홍익대 초빙교수 등이 ‘박목월 노트’를 디지털화한 뒤 전수 분석했다. 새롭게 발굴된 박목월의 작품들은 전집과 평전 형태로 올해 6월 전에 독자를 다시 찾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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