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70.속초 제일사진관
속초관광수산시장 36년 업력
4B연필로 사진수정하던 시절
16살 처음 흑백사진 기술 배워
포항·강릉 주문진 프리랜서 활동
1990년 속초 ‘제일사진관’ 인수
예식장·학교 앨범 등 사업 확장
“미소 담는 사진사 행복한 직업
나만의 공간서 운영 이어갈 것”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추억으로 진한 향기를 내뿜는 수많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사진’이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손쉽게 사진을 찍고 몇 번의 ‘뽀샵’과 인터넷으로 쉽게 인화가 가능한 요즘 우리 주변에서 ‘사진관’이라는 간판을 찾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그러나 꿋꿋하게 세월의 무게를 버텨내며 사진의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도 있다. 속초 제1의 관광지인 속초관광수산시장의 한자리를 36년째 지키고 있는 ‘제일사진관’이 그 주인공이다. 이곳은 중학교 졸업 후 평생 사진사로 살아온 최상후(85)씨의 작업실이다.
최 씨가 사진과 연을 맺은 것은 16세 때다.
가정이 어려웠던 최 씨는 중학교 졸업 후 고교 진학을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어야 했다. 당시 담임 교사로부터 “지인 중 사진관 사장님이 있는데 사진관에서 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더라”라는 얘기를 듣고 지역에 몇 없었던 사진관 중 하나인 ‘승리사진관’의 문을 두드렸다.
최 씨는 “당시에는 흑백사진이었는데 사진찍는 기술을 비롯해 암실에서 사진 인화하는 것들을 배웠다”며 “또 요즘처럼 포토샵 등 기계로 하는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던 시기였다. 뾰족하게 깎은 4B 연필 한 자루를 가지고 수정하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얼굴에 살이 없으면 연필로 살짝 볼에 색칠하고 반대로 살이 많으면 턱을 깎기도 했다. 이를 연필 수정이라고 한다”며 “특히 결혼식 사진의 신부얼굴을 수정할때는 가장 집중했고 그 과정이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승리사진관에서 10여년 쯤 사진에 대한 모든 것을 배운 최 씨는 이후 포항과 강릉 주문진 등에서 프리랜서 사진 기사로 활동했다. 사진은 최씨에게 돈벌이 수단만이 아니었다. 작은 구도 변경만으로도 변화하는 사진에 호기심을 느꼈고 하나하나 배워가고 또 노하우가 쌓이면서 애착은 더욱 강해졌다. 최 씨는 “당시 마음이 맞는 다른 사진 기사들과 산으로 바다로 또 강으로 출사도 많이 다녔다”며 “또 관광지에서 여행객들을 대상으로도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속초에 돌아온 최 씨는 지인이었던 당시 제일사진관 사장으로부터 사진관 인수를 권유받고 이를 수락, 제일사진관의 2대 사장이 됐다.
초반 사진관 운영은 꽤 잘됐다. 속초 시내 초중고 학교 졸업 앨범 수주에 주력하면서 예식장과의 협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최 씨는 “한때는 속초고를 비롯해 매년 지역에서 5~6개 학교 졸업앨범을 내가 제작했다”며 “타지에서 활동을 했다보니 기존 속초에 있던 사진관과 달리 앨범 구성을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또 교사들과의 친분관계 유지를 위해 술도 많이 사먹였다”고 귀띔했다.
위기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디지털카메라 일명 ‘디카’의 시대가 찾아온 것이다. 카메라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도 등장했다. 더이상 필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어졌고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면서 사진관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급격히 줄었다. 당시 최씨의 나이는 이미 60세를 넘었었다. ‘디카’ 시대가 오면서 포토샵은 기본적으로 할 줄 알아야 했지만 최씨는 컴퓨터 조차도 다루지 못했었다.
최 씨는 “컴퓨터를 비롯해 자재를 모두 바꾸는데도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며 “이후 서울과 춘천 등을 왔다갔다 하며 포토샵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제일사진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손때가 잔뜩 묻은 카메라와 조명 등 사진 기자재가 눈에 띈다. 벽에는 결혼사진과 인물 사진, 특별한 날을 기념하거나 관광지에서 찍은 가족사진 등 다양한 사연을 담은 액자들이 걸려 있다.
사진관 한 편에는 오래 전 필름 현상과 사진을 인화하던 암실로 향하는 문이 그대로 있다. 그러나 현재 필름카메라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암실은 최 씨가 지친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한지 오래다.
최 씨는 “한창 일할 당시 암실의 약품 냄새가 전혀 역하다 느끼지 못했고 어두운 곳에서 나오는 약한 조명은 오히려 정신을 집중 시켜줬다. 밤을 새워 작업해도 좋았다. 지금도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는 암실이 온전한 나만의 공간인 것은 변하지 않았다”고 웃었다.
어느덧 최씨의 나이가 80을 훌쩍 넘겼다. 사진관 운영은 악화일로지만 사진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생각이다. 최상후 씨는 “사람들은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사진 찍을 때만큼은 인상을 쓰지 않는다. 사람들이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사는 아주 행복한 직업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만 두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다”고 말했다.
박주석 jooseok@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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