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 그 후 - 다시 찾은 미래] 4. 폐광의 평행이론: 12·12 태백시민 생존권 쟁취 총궐기

김정호 2024. 3. 13.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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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서 목 놓아 외친 생존권
25년 흘러도 변한 건 없었다
폐특법 태백경기 부양 효과 미미
1999년 대규모 시민궐기 대회
농성·열차 차단 등 대정부 투쟁
연수원 유치 등 5개항 합의 도출
2024년 대체산업 육성 지지부진
장성광업소 폐광 앞 주민 우려
광업소 수몰 반대 자원화 추진
정부 차원 산업 발굴 한목소리
▲ 1999년 12월 12일 태백 중앙로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태백시민 생존권쟁취 총궐기가 열렸다. 사진제공=태백시청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지금 태백의 모습은 25년 전 12·12 태백시민 생존권 쟁취 총궐기 때와 많이 닮아있다. 대체산업 발굴 없이 탄광이 문을 닫자 지역은 갈 길을 잃었다. 고통은 20여년 째 이어지고 있다. 1999년 12월 12일. 맹추위에도 불구하고 태백 주민 1만여 명이 중앙로에 모여 지역을 살려달라는 외침을 쏟아냈다. 12·12 태백시민 생존권 쟁취 총궐기다. 장성광업소 폐광이 예정된 2024년, 주민들은 또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하는 상황을 맞이할까 우려가 크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수갱이 두 곳이나 존재하는 장성광업소와 지역 내 수많은 탄광은 사람들을 태백으로 불러 모았다. 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장성읍과 황지읍이 통합돼 태백시로 승격될 정도였다. 태백시 인구는 1987년 12만208명까지 늘어나며 정점을 찍었다.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지역 내 많았던 탄광들은 하나 둘 씩 문을 닫았고,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와 그들의 가족은 태백에 흘러왔던 것처럼, 다시 일자리와 살 곳을 찾아 태백을 떠났다. 그렇게 태백시 인구가 정점을 찍은 지 10년 만인 1997년 태백시 인구는 6만여명으로 급락했다. 정점일 때와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폐광의 여파는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광부들을 주 고객으로 삼던 음식점과 상가의 연쇄적인 폐점으로 이어지며 경제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탄광은 사실상 태백시 경제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경제를 지탱해 오던 유일한 생존수단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지역 주민들은 몸소 느끼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시행했지만 그에 대한 대책은 내세우지 않는 암울한 시기가 장기화되면서 결국 폐광지역 주민들은 한계에 내몰렸다. 결국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때 태백시 뿐만 아니라 정선군에서도 1994년 2월 고한·사북 지역살리기공동추진위원회를 발족하고 대정부 투쟁에 들어갔다. 지역주민들이 폐광 이후 대책 마련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지역주민이 주도로 상가 철시, 자녀 등교 거부, 삭발·단식투쟁을 이어나갔다. 청와대에 다른 지역에서는 유치하기를 꺼리는 시설인 핵폐기물 처리장까지 유치하겠다는 내용의 건의서까지 보내기에 이르렀다. 결국 폐광지역 주민들의 요구는 1995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이른바 ‘폐특법’ 제정으로 결실을 얻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폐특법의 핵심 내용인 내국인 카지노가 정선 사북에 설립됐고 카지노 배후도시로서의 이익을 태백시민들은 기대했으나 현실적으로 지역 경기부양에 큰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석탄산업합리화정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태백시민의 실망감은 극에 달했고 주민들은 대체산업을 요구하면서 다시 한번 거리로 뛰쳐나왔고 12·12 태백시민 생존권 쟁취 총궐기대회를 시작으로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들은 상가철시, 산업자원부 동부광산보안사무소 점거, 연탄 1999장 야적농성에 이어 무연탄 수송열차 차단 등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전달했다. 이때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도 출범하며 궐기대회를 이끌었다. 결국 대규모 시민궐기 12일째인 1999년 12월 23일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는 정부로부터 5개항의 대정부 합의문을 받아냈다. 대정부합의문 5개항 내용으로는 10년간 석탄가격지원금 1조원 보장, 3000명 이상 신규고용효과가 있는 대체산업 재원부담, 공공 및 민간연수원 유치, 온천개발 소요재원 부담, 폐광지역 진흥지구 개발사업 당초대로 추진, 태백시 대표와 정부관계부처 차관회의 정례화 등이 포함됐다.

김주영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장이 태백 지역사회 활동에 뛰어든 것도 1999년 12월이었다. 그는 1999년 12월 12일 대정부 투쟁의 도심 시가지 집회 기획을 시작으로 태백시 지역현안대책위원회와 인연을 맺었다. 김 위원장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생각해 보면 그동안 크고 작은 집회를 주도했지만 언제나 집회의 끝은 결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무너져가는 지역 경제를 보면서 지역을 위해 실질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당시 투쟁을 회상하며 좀 더 완벽한 폐특법을 만들었다면 지금 태백 뿐 아니라 도내 폐광지역의 현실은 사뭇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그때 당시에 폐특법을 만들어야겠다는 것에 초점을 두다 보니 법을 응용해 예타 면제 등 여러 혜택을 지역에 가져오는 내용을 담지 못했다”며 “현재 이철규 의원을 비롯한 지역구 의원들이 법안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이 많아 정부 차원에서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 1999년 12월 12일 태백 중앙로에서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태백시민 생존권쟁취 총궐기가 열렸다. 사진제공=태백시청

대체산업 육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은 1999년에도 언급됐다. 김 위원장은 “태백현대위가 노인요양 사업이나 강원랜드 기숙사 건립에 매진하며 유치까지 성공했지만 이런 대체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발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장성광업소 폐광을 앞둔 현 시점이 태백 지역으로써는 정부 사업을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고 그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절대 장성광업소를 수몰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황상덕 석탄산업전사추모 및 성역화추진위원회 위원장도 1999년이나 2024년이나 태백은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9년 당시 진폐단체 회장으로 12.12 투쟁에 참여했던 황 위원장은 “당시 태백 주민들은 지역이 소외되는 걸 느껴서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다”며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력했음에도 대체산업 유치에는 어려움이 많았고 지금도 그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1999년이나 2024년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황상덕 위원장은 태백 지역에서 반복되고 있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태백에서도 강원랜드 같은 대표시설이 생기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황 위원장은 “태백시가 너무 낙후되다보니 태백시를 살리기 위해서는 강원랜드 같은 시설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장성광업소를 수몰하지 말고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 위원장은 “태백에 장성광업소 이외에서 크고 작은 탄광이 40여개 넘게 있었는데 합리화사업 때 다 수몰하다 보니 자원으로 활용도 못 하고 지금은 오염수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며 “광해광업공단에서 나서서 오히려 장성광업소를 자원화한다면 지역 일자리 창출 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써도 충분히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김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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