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시대, 시급히 대비해야 [한국의 창(窓)]
외부 자아를 넘어서는 참된 '셀프'
AI 혁명으로 중요성 더 커진 셀프
일상의 자아실현과 강화된 셀프
팬데믹 이후 식당에서 '셀프'라는 단어를 자주 본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스스로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주문도 스스로 하고 뒷정리도 스스로 한다.
'셀프' 현상은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의 결과다. 팬데믹 이후 주문 단말기가 확산되었고, 음식 배달 로봇이 등장했다. 우리는 점점 이런 기계들과 공존해야 한다. 이로 인해 개인의 독립성과 효율성은 강화될 것이다. 더 많은 일들을 스스로 해내는 과정에서 탁월한 기계들과의 협업은 필수적이다. 이를 잘 해내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삶은 극명하게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은 인간의 정신세계를 에고(Ego)와 셀프(Self)로 구분하였다. 에고(Ego)는 우리가 타인에게 보여주는 자아, 자신을 둘러싼 외부 환경 속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사회적 자아라고 정의하였다. 이는 우리의 생각, 감정, 행동을 직접 제어하는 일상의 인식 및 경험의 세계다. 반면에 셀프(Self)는 외부적 자아(Ego)뿐만 아니라, 내면의 본성과 무의식까지를 포함하는 본질적인 참된 자기를 의미한다.
성전을 짓는 목수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목수 일을 하고 있다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에고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하느님의 뜻을 펼칠 수 있는 성전을 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이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 더 큰 가치를 추구하는 셀프의 행위라 할 수 있다. 셀프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책임구현, 지구적 가치 추구 등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셀프가 에고를 관리하며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진정한 삶이 완성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산업화 이후 인류사회는 셀프보다는 에고가 강조되는 사회였다. 학교는 틀에 맞춰진 인재를 육성하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셀프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저 사회적 교감이 중요했고 그들의 인정이 필요했으며 물질적 풍요만 있으면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강조된 에고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더욱 좌절의 빈도와 강도가 강해질 것이다.
이제 소수의 예술가나 철학자 등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셀프를 모두가 빠르게 소환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나는 과연 어떤 의미의 삶을 살고자 하는지 지구공동체에 어떤 기여를 하고 싶은 것인지 등등의 질문에 답을 찾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아실현의 구현 과정이다. 셀프가 강한 자들이 많아지면 우리 사회는 개인의 성공보다 공동체의 발전, 물질적 풍요보다 내면의 풍요,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시하는 가치관이 지배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사치품의 소비도, 팔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진 제품의 소비도 현저하게 줄어들지 모른다. 생산되어 소비자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쓰레기 되어 버리는 그 많은 신상품들이 내뿜는 탄소와 자원의 훼손을 범죄행위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셀프가 강해지면 지구촌의 다른 한쪽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고 잉여 자원의 재분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기적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제 에고를 지탱할 힘이 없다. 강력한 에고를 가진 인공지능을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셀프를 강화하는 것뿐이다. 셀프를 통해 지구적 선을 추구하여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셀프가 강화되어야 인공지능과 동반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교육제도의 개혁은 매우 시급하며, 에고에 함몰되어 있는 기성세대의 사회교육도 시급히 실시되어야 한다.
셀프로 반찬을 뜨면서 이 지구를 훼손하지 않게 꼭 필요한 만큼만 선택할 수 있음에 그리고 식당 종업원에 의해 원하지 않은 양의 반찬을 받아 들고 다 먹지 못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감사한다.
전하진 SDX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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