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논점/조종엽]땜질 처방으론 고갈 못 막아… 낸 만큼 받는 ‘新연금’ 주목
국민연금이 미래로 가는 길은 어디에 있을까.
일각에선 기금 고갈 이후엔 수급자들에게 줄 보험료를 해마다 가입자들에게 걷는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 제5차 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부과방식 전환 뒤 현행 소득대체율(40%)을 유지할 때 매년 급여를 충당하는 데 필요한 보험료는 2060년 29.8%, 2080년 34.9%에 이른다. 보험료율이 35%면 월 소득이 300만 원일 때 세금과 다른 보험료를 제외하고 국민연금보험료로만 약 105만 원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보험료율을 공론화위 안처럼 3, 4%가 아니라 아예 현행의 두 배인 18%로 대폭 올린다고 가정해도 비슷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기금 고갈 시점은 2080년대로 연기되지만 이후 세대는 여전히 30∼40%의 보험료율을 감당해야 한다.
부과방식으로 연금을 안정적으로 지급하려면 합계출산율이 2명은 돼야 한다. 그래야 뒷세대가 적절한 보험료로 비슷한 인구의 앞세대를 부양할 수 있다. 출산율이 1.8명인 프랑스도 지난해 연금 수급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2년 늦추는 개혁을 단행했다가 전국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 등 진통을 겪었다. 하지만 한국은 출산율이 올해 0.7명도 안 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으로도 극적 상승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 같은 문제는 국민연금이 처음부터 앞선 세대가 낸 보험료와 운영수익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도록 설계된 데서 비롯됐다. 개혁이 지연되고 급격한 저출산 고령화의 덫에 빠지면서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 보험료율 조정을 뛰어넘는 제도 자체의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내후년 이후 출생아들, 낸 연금 절반도 못 받아”
현 연금의 세대별 기대수익비를 살펴보자. 이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만 60세가 되는 1964년생 이전 세대는 기대수익비가 ‘2’가 넘는다. 누군가 보험료로 1억 원을 냈고, 그 운용수익이 1억 원이라고 치면, 연금 급여는 4억 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연금에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지만 고소득자의 기대수익비도 1이 넘는다. 이런 초과 수익은 미래세대가 감당해야 한다.
기대수익비는 점점 하락해 올해 만 20세가 되는 2004년생은 ‘1’까지 떨어진다. 기금 고갈 이후 앞선 세대의 급여를 충당하기 위해 보험료가 급격히 오르는 탓이다. 그래도 이들 세대까진 적어도 낸 돈과 운용수익만큼은 급여로 받을 수 있다.
지금의 어린이와 청소년 세대부턴 기대수익비가 ‘1’ 아래로 떨어진다. 내년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기대수익비가 약 ‘0.5’이고, 이후 아이들은 쭉 ‘0.4’대다. 누군가 낸 보험료와 운용수익이 6억 원이라고 칠 때 급여는 3억 원도 못 받는다는 뜻이다. 미래세대가 이런 구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적적인 출산율 회복이 없다면 국민연금은 언젠가 파국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에선 베이비붐 세대의 기대수익비가 ‘2’에 가까운 건 잘못이 아니라는 분석도 있다. 이들은 부모를 봉양했으면서도 자식으로부턴 부양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대이고, 빈곤율도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초연금을 개혁해 대응할 문제라는 의견이 나온다.
● “적립된 만큼 가져가는 DC형 연금 필요”
현 연금은 연금 가입 이력 등으로 나중에 받을 급여가 미리 정해지는 확정급여형(DB)이다. 그러나 전체 연금 차원에선 DB형은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다. 수십 년 뒤 인구와 경제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연금 재정을 5년마다 새로 추계함에도 매번 재정수지 전망이 악화하는 것도 그 탓이다.
KDI 연구진은 신연금은 수급 시작 시점에 해당 세대의 기대여명에 따라 급여 수준을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적립된 만큼만 가져가도록 하면 기금은 이론적으로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은 설계하기 나름이다. 연구진은 “보험료율을 15.5% 안팎으로 하면 2006년생부터 현행과 같은 소득대체율 40%의 급여 수준을 보장할 수 있다”고 봤다.
둘째, 빚이 쌓여 가는 현 연금과 단절하는 일이다. 국민연금 기금적립금은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이르는 1036조 원으로 커졌지만 현 가입자에게 약속한 급여를 지급하기에도 부족하다. 현 연금이 당장 문을 닫고, 추가 가입도 납부도 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2045년까지만 약속한 급여를 줄 수 있다. 이듬해부터 모든 가입자가 사망할 때까지 줘야 할 연금액(미적립 충당금)이 올해 가치로 환산해 609조 원(GDP의 26.9%)에 이르지만 이 돈은 없다. 기존 가입자가 보험료를 계속 내도록 할 경우엔 미적립 충당금의 규모가 더욱 커진다. 줘야 할 돈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금융대 교수는 이 ‘암묵적 부채’의 규모가 지난해 가치 기준 1825조 원에 이른다고 최근 연금개혁 세미나에서 밝혔다.
KDI 보고서는 현 연금은 계정을 분리하고 추가 납부를 중단한 뒤 국가 일반재정을 투입해 미적립 부채를 충당하자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기금운용수익을 5%로 잡으면 해마다 30조 원씩 투입해도 600조 원의 뭉칫돈을 넣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며 “당장 재정을 투입해야 기대수익비가 상대적으로 큰 현세대도 미래세대의 부담을 나눌 수 있다”고 강조했다.
● ‘고갈 이후 위험 과장’ vs ‘낙관 기대 안 돼’
신연금 구상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신연금은 공적연금의 가치인 ‘세대 간 연대’를 단절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며 “최저보장 연금에 대한 고민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강구 연구위원은 “신연금도 개인 계좌가 아니라 연령이 같거나 비슷한 집단(코호트)을 묶어 지금과 비슷한 방식으로 세대 내에서 소득을 재분배할 수 있다”며 “현 세대 저소득층의 부양 부담을 인구도 적은 미래세대에 떠넘기는 건 옳지 않다”고 했다.
정부 재정을 신연금이 아니라 현 연금에 투입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베이비붐 세대가 지나간 뒤 2070년대가 되면 인구구조가 안정화되고 그동안 출산율이 오를 수도 있다”며 “현 연금에 재정을 투입해 저소득 가입자와 영세사업장을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기금 고갈 이후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분석도 있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2050년대 이후 아이들이 줄어들면 교육비 지출을 연금 기금으로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KDI 연구진은 “최근 25년 동안 경제성장률과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기대여명은 길어졌는데, 낙관적 기대를 바탕으로 연금을 개혁해선 안 된다. 신연금 개혁을 하지 않을 땐 현 연금에 투입해야 할 재정 규모가 609조 원보다 더욱 커질 것”이라는 입장이다. 현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 규모가 커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연금이 미래로 가는 길은 지금도 계속 좁아지는 중이다. 지난 정부가 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사이 연금 재정의 장기 건전성은 더욱 나빠졌다. 신연금 제안은 우리 연금이 그나마 ‘젊은 연금’이어서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부터 5년만 지나도 현 연금의 미적립 충당금은 869조 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이강구, 신승룡 연구위원은 “최소한 미래세대가 기성세대의 노후 보장을 위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담을 져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해야 보험료도 인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종엽 논설위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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