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유성열]AI 도입한다는 사법부의 허술한 전산망

유성열 사회부 차장 2024. 3. 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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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이 직면한 당면 과제는 재판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고법 부장판사 폐지 등 이른바 '사법 민주화' 정책으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심해지면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곳곳에서 침해당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한 천대엽 대법관도 취임사에서 △AI 활용 △사법 전산 시스템 고도화 등을 재판 속도를 높이는 방안으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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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사회부 차장
‘조희대 대법원’이 직면한 당면 과제는 재판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 시절 고법 부장판사 폐지 등 이른바 ‘사법 민주화’ 정책으로 재판 지연 문제가 심해지면서, 헌법이 모든 국민에게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곳곳에서 침해당하고 있다.

조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재판 속도 향상 방안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이다. 조 대법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정보통신 강국의 이점을 살려 신속히 분쟁을 해결할 수 있게 각종 절차를 개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취임 후 처음으로 단행한 법관 인사에서 법원행정처의 정보화 관련 조직을 ‘사법정보화실’로 통합하고 고법판사를 실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일반직 공무원이 맡아온 정보화 조직을 법관이 책임지도록 해 IT 활용과 AI 도입을 촉진시키겠다는 의지로 해석됐다.

조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한 천대엽 대법관도 취임사에서 △AI 활용 △사법 전산 시스템 고도화 등을 재판 속도를 높이는 방안으로 제시했다. 법원행정처는 각종 재판 절차와 민원 업무에 AI를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할 경우 재판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보고,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법부가 이렇게 ‘정보화’를 전면에 강조하고 나선 배경에는 한국의 전자소송·전자정부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하지만 AI를 도입하려면 일단 그 자신감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사법부 전산망이 불안한 징후를 계속 노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법원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해 전국 법원에서 재판 차질이 속출하자 법원행정처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고개를 숙였다. 최근엔 북한이 사법부 자료를 해킹으로 탈취해 간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야 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 등에 따르면 북한 정찰총국 해킹부대 ‘라자루스’는 3년여 전부터 사법부 전산망에 드나들면서 무려 335GB(기가바이트) 분량의 서류 등을 탈취해 갔다. 법원행정처는 개인회생 사건 관련 주민등록초본 등 26건의 문서가 유출된 것을 확인했지만, 이 외에 또 어떤 자료가 유출됐는지 등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사법부의 늑장 대응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2월 악성코드를 처음으로 인지하고 삭제에 나섰다. 하지만 국정원과 경찰에는 알리지 않다가 지난해 12월에야 수사기관과 공조를 시작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많아 수사 의뢰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법원행정처가 신속히 대응했다면 해킹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법부 전산망은 가족관계등록부(옛 호적부)부터 부동산·법인 등기와 소송 서류까지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는 국가 보안 시설이다. 재판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를 도입하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AI가 활동할 전산망이 보안에 취약하다면 재판 지연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외부 세력이 침입해 판결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AI를 도입하려면 전산망 보안부터 강화하는 것이 순서라는 것을 법원행정처가 인식하길 바란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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