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혁신공천과 망천, 그 간극
정규시즌보다 요란했던 공천리그
혁신·안정 사이 판단은 국민의 몫
비례대표 공천으로 실점 만회될까
정치권 스토브리그 격인 여야 공천이 막바지다.
정당의 공천사를 되돌아보면 정치권 스토브리그는 정규 시즌보다 요란한 경우가 많았다. 공천에서 치명상을 입어 압승이 예상되던 선거에서 참패로 끝난 일이 적잖다. 대대적 물갈이로 혁신의 주도권을 쥐고 뜻밖에 대박을 친 경우도 있다.
2015년 12월19일. 대구에서 ‘진박감별사’가 처음 등장한 날이다. 대구 동구을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에 맞서 이재만 전 대구 동구청장이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열었다. 친박(친박근혜)계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여기서 단상에 오른 친박계 조원진 의원이 “모두가 친박이라고 주장하는 데 진실한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제가 가는 곳이 진실한 사람(진박)이 있는 곳”이라고 역설했다. 결과론이지만 20대 총선 승패의 분수령이 된 순간이다. 이후 ‘무대’(무성 대장의 준말·김무성 대표 별명)의 ‘옥새 파동’(2016년 3월24일)으로 진박감별사 사태는 정점을 찍으며 민심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4월1일 발표된 갤럽 여론조사에서 여권의 수도권 지지율은 급락했고, 결국 여권은 참패했다.
2000년 2월18일.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칼을 뺐다. 대구·경북의 허주(김윤환 의원의 아호)를 쳤다. 4선 이상 중진 의원 14명이 무더기로 날아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2·18 대학살’이었다. 수구적인 여권의 이미지를 벗어야 총선과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새로운 리더십을 갈망하는 민심의 저변을 제대로 간파한 셈이다. 사실상 숙청이었고, 후폭풍은 분당으로 이어졌다.
보수 정당의 상반된 두 공천의 결과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진박감별사들은 클린스만 신세가 돼 여의도를 떠났다. 2·18 대학살은 혁신공천의 좋은 사례로 두고두고 회자된다.
망천과 혁신공천을 가른 요인은 무엇일까. 교체율 같은 계량화한 숫자는 아니다.
진박감별사가 횡행하기 전 20대 국회의원 선거는 ‘1여 다야’로 여권이 유리한 분위기였고, 압승을 예측하는 여론조사도 많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현역 의원 157명 중 59명이 교체되면서 교체율은 37.6%로 더불어민주당(29.1%)을 앞섰다. 그렇지만 실제 총선 결과 새누리당은 수도권 122개 선거구에서 35곳에만 당선자를 냈고, 영남에서는 야권 및 무소속 후보가 17명이나 당선됐다.
관건은 읍참마속이다.
2·18 대학살 당시 김윤환과 이기택은 당 지분이 있는 거물들이었다. 김윤환은 이 총재를 대선 후보로 만든 킹메이커였다. 허주를 친다는 건 이 총재에게 인간적으로는 배신행위고, 정치적으로는 무모한 선택이었다. 이 총재도 당시 윤여준 총선기획단장이 김윤환·이기택 등을 공천에서 배제하라고 조언하자 “미쳤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물갈이는 이뤄졌고, 그 덕에 빈자리를 오세훈·원희룡 등 젊은 정치인이 채웠다. 한나라당은 제16대 총선에서 273석 중 무려 133석을 얻으며 제1당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친명횡재 비명횡사’나 ‘현역 불패’ 공천으로 요약되는 이번 총선 공천 결과의 운명은 그런 점에서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오케스트라에서 트럼펫은 감추려고 해도 감출 수 있는 악기가 아니다. 여럿이 연주할 때 음을 놓치면 나팔 소리가 너무 튀어서 조화가 흐트러진다. 대신 내공이 있는 선수들이 세련되게 연주하면 공연은 그야말로 빛을 발한다. 튈까 봐 걱정돼 트럼펫을 뺀 오케스트라에서 승리의 개선행진곡을 기대할 수 없지 않은가. 남은 비례대표 공천 등에서 스토브리그에서 잃은 실점을 조금이나마 만회할 지휘자는 누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이천종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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