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윤의어느날] 괜찮다는 그 말

2024. 3. 1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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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려견은 자그마하고 사납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하며 반려견을 다독인다.

그런 생각들을 나는 겁에 질린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한다.

반려견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질 시간을 버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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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반려견은 자그마하고 사납다. 작은 체구에 비해 흉부가 넓어 짖는 소리가 우렁차고 덩치 큰 개들에게 자주 덤빈다. 쉴 새 없이 주위를 경계하고 코와 귀를 찡긋거린다. 자신을 안아 드는 건 질색하지만 모르는 척 내버려두면 슬그머니 다가와 내게 몸을 바짝 붙이고 눕는다. 내가 손을 뻗으면 구운 떡처럼 납작해져 슬슬 피한다. 그러니까 겁이 많다는 얘기다. 작고 겁이 많기 때문에 내 반려견은 쉽게 짖고 쉽게 도망치고 쉽게 질색한다.
소리에 예민한 내 반려견은 집 앞에 놓이는 택배 상자 소리나 이웃이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 소스라치곤 한다. 귀와 등털을 빳빳이 세우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긴 채 온 집안을 뛰어다닌다. 숨차게 짖고 발을 구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라고 말하며 반려견을 다독인다. 반려견 곁에 나란히 앉아 들썩이는 몸을 쓰다듬는다. 할딱거림이 잦아들 때까지, 느른하게 꼬리를 흔들며 자리에 엎드릴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주문을 외듯 말한다. ‘괜찮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반려견에게 건네는 말은 제법 높은 톤으로, 다정하고 끈질기게 이어진다. 집에 들여온 택배 상자를 열어 냄새를 맡게 해 주면 개는 다시금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짖는 걸 멈추고 내게 몸을 기대는 반려견에게 ‘잘했어’ 라고 말한다. 잘했어. 괜찮아. 가능한 한 동글고 보드라운 말만 골라 건넨다. 휘발되지 않은 말들이 주변 가득 고이면 그때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째서일까. 이토록 쉽게 쏟아져 나오는 말을, 이렇게 선뜻 배어 나오는 다정함을 왜 내게는 전하기 어려울까. 기다려 주는 마음과 다독임이 나를 향하는 일은 또 왜 이렇게 드물까. 소리에 예민한 반려견만큼이나 나도 마음이 예민한데 말이다. 여기저기 큰소리를 치고 몸을 잔뜩 부풀린 채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나는 사실 겁이 많고 쉽게 당황하는 단순한 사람이다. 그런 나를 나는 매일같이 다그치며 살아왔다. 나를 질책하고 비난하는 데 하루를 다 쓰던 시절도 있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기껏 읽은 책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글을 쓰지 않는다고, 형편없는 글을 썼다고 매일같이 나를 욕했다.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늘 나를 못마땅해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내가 한 유일한 일은 나를 미워하는 일이었다.

미워하는 마음은 직선으로만 뻗는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뻗어 나가는 미움은 속도가 붙으면서 광포해진다. 내가 밉고 싫고, 주변 사람들이 원망스럽고, 세계가 더없이 오만하고 불공평해 보이는 시간들을 나는 겪었다. 곡선으로 흐르는 다독임과 위로의 시간을 그때 알았더라면 나는 조금 덜 외로웠을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나는 겁에 질린 반려견을 쓰다듬으며 한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너그러움을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반려견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너그러워질 시간을 버는 셈이다. 그러니 나는 의아한 마음이 들 때마다 반려견에게 그랬듯, 내 가슴에 한 손을 얹고 가만히 쓰다듬어 보는 것이다. 괜찮아, 전부 다 괜찮아, 너는 잘하고 있어,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안보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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