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정양환]오마르의 별자리는 어디쯤 있을까
아이는 고모 소매를 움켜쥐었다. 놓치는 순간 사라질까 봐. 퀭하니 움츠린 눈망울. 꼬마는 오른손에 힘을 꽉 줬다. 잃어버린 왼손은 옷자락에 감춘 채.
AP통신에 따르면 오마르 가족은 전쟁 2개월 전쯤 경사를 맞았다. 아빠 하젬과 엄마 아즈하르가 어렵사리 가자지구 시영아파트를 장만했다. “넉넉하진 않아도 착실한 부부였어요. 첫 자가라며 기뻐했는데….” 고모 마하는 울음을 삼켰다. 이젠 잔해만 남은 아파트를 떠올리며.
그래도 그땐, 신이 보살폈다 여겼다. 폭격 몇 분 전 방공호에 숨어 참화를 피했다. 오마르네는 남쪽 할아버지 댁으로 갔다. 이웃에 살던 고모 일가는 서쪽 친지에게 의탁했다. “가족을 잘 돌봐야 한다.” 마하는 그게 남동생과 나눈 마지막 말일 줄 몰랐다.
12월 6일. 불길한 전화벨. “오마르가 위독합니다.” 망가진 심장을 부여잡고 뛰어간 응급실. 꽃처럼 환하던 아이 얼굴이 짓이겨져 있었다. 왼팔은 팔꿈치 아래가 사라졌다. 손끝이 다 찢어진 낯선 사내는 되레 미안해했다. “그 집에 미사일이 떨어졌어요. 삽이 없어 다들 손으로 파냈지만, 다른 생존자는 없더군요.” 오마르의 세 식구와 할아버지 집안 5명은 그렇게 떠나버렸다.
현지 매체는 “오마르가 살아남은 게 기적”이라 했다. 지금 가자 병원엔 간단한 열상(裂傷)조차 치료할 의약품이 없다. 느릿느릿 부기는 가라앉았으나, 이마와 뺨은 흉터로 뒤덮였다. 네 살짜리가 뭘 알까마는…. 간호사들은 아이를 토닥거렸다. “얼굴에 멋진 별자리(zodiac sign)가 생겼구나.”
다행히 하늘이 끝까지 외면하진 않았다. 미국 자선단체 세계의료구호기금(GMRF)이 손길을 내밀었다. 25년 이상 전쟁 피해 아동을 도와온 단체는 항공료와 수술비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엘리사 몬탄티 GMRF 부회장은 “오마르는 이번 전쟁 뒤 가자에서 온 첫 번째 팔레스타인 어린이”라고 전했다.
돈이 생겼어도 여정은 가팔랐다. 아픈 아이를 홀로 보낼 수야 없는 노릇. 하지만 마하도 세 아이의 엄마다. 굶주리는 난민촌에 자식을 두고 발걸음이 떨어지겠나. “아이들이 먼저 떠밀었어요. ‘엄마, 우린 걱정 말아요. 오마르는 엄마가 필요해요’라며.” 밤새 베개를 적신 고모는 조카를 안고 미국으로 갔다.
올 1월 17일 뉴욕에 닿은 뒤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낯설어하던 의수(義手)도 잘 적응했다. 오마르도 가끔 옅은 미소를 내비쳤다. 문제는 ‘귀향’이다. 인도 매체 더힌두는 “이스라엘이 미국행도 ‘이유 불문 출국금지’라며 한 달을 가로막았다”고 했다. 가자 재입국도 몇 주째 답이 없다. 현재 이집트 보호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마하로선 가슴이 찢어진다. “통신 상태가 나빠 드문드문 전화로 아이들 생사만 확인해요. 먹질 못했는지 목소리에 힘이 없어요.”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가자에선 6일 기준 아사(餓死)만 100명이 넘었다. 젖먹이 포함 어린이도 18명이나 된다. 이러니 다시 간들 고민이다. 절망이 시커멓게 드리운 땅에 오마르를 데려가는 게 맞는 걸까. “저야 죽더라도 가족과 있어야겠지만, 이 아이는 무슨 죄인가요.”
오마르는 아직 죽음을 모른다. 더는 누나를 볼 수 없단 걸 어렴풋이 느낄 뿐. 그의 ‘멀고 험한 길(long and winding road)’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커서 파일럿이 되고 싶어요.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데려갈 수 있잖아요.” 눈가에 새겨진 별자리는 아이를 어디로 인도할지. 기왕이면 꿋꿋이 걸어가는 황소자리이길. 시린 밤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본다.
정양환 국제부 차장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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