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비 뛰는데 기름값까지…더 오른 미국 물가, 금리 인하 힘 빠지나
미국 2월 물가가 1월 충격에 비해서 크게 높진 않았지만 여튼 예상치를 넘어서며 중앙은행의 저감기대를 저버렸다. 지난해 하반기에 꺾일 거라던 주거비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가운데 2월에는 에너지 가격마저 오르면서 상방압력이 커진 탓이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 통계국은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비 0.4%, 전년비 3.2%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월간 상승률은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연간으로는 기대치를 0.1%p 웃돌았다. 시장에 미치는 충격은 지난 1월처럼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내주 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둔 연방준비제도(Fed)에는 좋지 못한 소식이다. 물가가 예상과 달리 끈적한 상태로 3%대에 달라붙어 내려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금리인하 시그널을 시장에 쉽게 내줄 수 없을 것으로 보여서다.
게다가 식품과 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2월 근원 CPI는 전월비 0.4%, 전년비 3.8% 상승했다. 다우존스 조사에 따르면 경제학자들은 2월 근원 CPI가 월간 0.3%, 연간 3.7% 상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결과치는 예상보다 각각 0.1%p씩 높은 셈이다. 연준은 물가목표를 2%로 잡고 고금리 긴축정책을 유지하고 있는데, 연율 3.8%에 머무르는 물가수준은 적잖은 부담이 될 거로 보인다.
물론 연준이 근거로 삼는 물가지표는 CPI 보다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에 집중돼 있다. CPI에는 주거비 비중이 35% 포함되지만 PCE에는 20%만 들어가기 때문에 전반적인 물가상황의 왜곡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월 CPI 쇼크에도 불구하고 그달 근원 PCE는 전년비 2.8% 상승한 것으로 나타나 목표치인 2% 경로로 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시장에 안겼다.
그러나 먹고 사는데 필수적인 주거비와 에너지, 식품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것은 미국인들의 삶을 팍팍하게 하는 실제적인 문제다. 2월에도 1월처럼 주거비가 상승했다. 주거비는 2월에 월간으로 0.4% 올랐고, 연간으로는 5.7%나 상승했다. 월세지수가 월간 0.5% 상승했고 주택 소유자가 자신의 부동산을 임대해 얻을 수 있는 가상 척도인 소유자 등가 임대료는 0.4% 올랐다.
지난해부터 꺾일 거라던 주거비가 계속 오르는 이유는 미국에 집이 모자라서다. 미국 경제는 IRA(인플레이션 방지법) 보조금을 무기로 한 리쇼어링 정책으로 서비스업은 물론 제조업도 활황세를 보이며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에만 300만명의 외국인 근로자와 이민자를 입국시켰는데 중남미 지역에서 넘어온 일용근로자도 많지만 상당수는 첨단 제조업에 필요한 고급인력이었다. 이들이 중상층 주거지에서 주택매수 전쟁에 뛰어들거나 임대시장의 임차인 후보자로 나서면서 렌트비가 꺾일 줄을 모르는 것이다. 여기에 고금리로 인해 주택 매매시장이 침체하고 자재비 폭등으로 신규주택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면서 수급은 더 꼬인 상황이다. 건설업자들도 돈을 빌려서 새집을 지어야 하는데 금리가 높다보니 사업이 원활하지 못한 것이다.
2월에는 더군다나 휘발유 가격도 올랐다. 에너지에 주거비까지 더하면 물가지수 월별 증가분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에너지 지수는 월간 2.3% 올라서 지정학적 위험을 여실히 반영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란이나 다른 이슬람 반군의 확전 가능성이 나오고, 우크라이나-라시아 전쟁은 2년을 넘어가고 있다. 미국이 원유생산량 및 재고량을 늘리면서 유가 앙등을 막고 있지만 유가는 배럴당 70달러대 후반을 넘어 80달러대 중반에서 머물고 있다.
이밖에 2월에는 주거비와 항공료, 자동차 보험, 의류 등이 올랐고, 여가비와 개인위생품목 지수, 가구 등은 내렸다. 항공운임지수는 1월 1.4% 상승에 이어 2월에도 월간 3.6%나 올랐다. 자동차보험지수도 새해를 맞아 전월비 0.9%나 상승했다. 에너지는 연간으로는 1.9% 하락했지만, 식품은 2.2% 올랐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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