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봄의 두 얼굴

기자 2024. 3. 12.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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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쉽지 않다. 시인 엘리옷이 말한 대로 봄은 잔인함의 연속이다. 봄은 학기나 업무가 시작됨으로 인해 적응 스트레스가 폭증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사회 활동으로 인해 상처도 더 받고 힘든 경험도 늘어난다. 봄날에 개최되는 온갖 가족행사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수치심을 극도에 달하게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확인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더 크게 자신의 불행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봄은 두 얼굴의 계절이다. 이 두 얼굴의 잔혹함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을 제외하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달은 2021년 3월, 2022년 4월, 2023년 5월이었다. 봄자살 예방이 정말 중요한데 왜 자살은 봄에 가장 많을까? 춥고 어두운 겨울도 아니고, 낙엽이 뒹구는 가을도 아니고, 뜨거운 여름도 아닌, 봄인 이유를 정신의학자들과 사회역학자, 면역학, 기상학자들은 중요한 가설들로 제안하고 있다.

첫째, 봄자살 증가의 원인을 재미슨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깨진 약속효과’라고 했다. 기대했던 봄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그 심리적 절망감이 자살로 이끈다고 보았다. 유독 ‘새로운’이라는 수식어를 부치는, 기다림의 계절이었던 봄의 약속이 깨지면서 무너져내린 마음이 자살을 실행하게 한다는 심리적 원인설이다. 봄 스트레스를 줄이고 실망감을 줄일 수 있는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

둘째,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소진 후 에너지 효과’를 이야기한다. 겨울 동안 우울 증상과 징후들로 지쳤다가 에너지가 올라오는 봄에 자살할 힘을 얻는다는 주장이다. 자살을 시도할 힘도 없었던 겨울을 지나 봄을 맞이하면서 오히려 역설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다는 가설이다. 자살 경고징후를 잘 알고 우울한 사람의 봄앓이를 잘 돌보는 것이 예방책이다.

셋째, 늦봄과 초여름에 증가하는 조울증 환자를 비롯한 감정조절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봄의 여러 자극이 감정동요와 이에 따른 불안정감을 만들고 이것이 자살 증가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감정 불안정-동요 효과’라고 할 수 있다. 조울증 환자를 비롯해 감정조절이 어려운 다양한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교육과 예방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넷째, 알레르기 항원설과 염증설이다. 미국 메릴랜드 대학의 포스톨란체 교수는 꽃가루가 가장 높게 퍼지는 시기에 자살률이 높다는 통계를 발견했다. 꽃가루를 통한 염증 반응은 사이토카인을 활성화시키고, 이는 우울과 자살을 부추기는 뇌회로를 자극한다고 발표했다. 겨울 일조량 감소로 인한 비타민D 대사문제와 함께 염증 스트레스 그리고 염증을 치료하기 위한 과정에서의 스트레스들로 인해 자살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염증 유도 자살 효과’ 가설이다. 봄날의 신체건강과 면역강화가 중요한 자살예방책이며 심각한 염증 환자의 우울을 잘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봄에 더 심각한 황사와 미세먼지 그리고 그 대기오염에 더 자주 노출되도록 하는 외출과 외부활동의 증가는 또 다른 중요한 봄자살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서울대 박상민, 황인영 교수팀은 미세먼지가 심각한 봄날 자살위험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90만명의 데이터로 확인했다. 미세먼지로 인한 자살부담은 그중에서도 운동하지 않는 40대 이상의 남성,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 5년 이내의 여성에게 더 크다고 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대책도 중요한 자살예방정책 중 하나이다.

봄자살 고조 현상이 알려지면서 예방 가능성도 더 높아지기 시작했다. 봄에 아픈 사람들, 동요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잘 보살피고, 친절과 공감을 통해 연민의 경험과 연대의 네트워크 속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면 확실히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자살은 예방 가능하며, 우리 모두가 할 일이다. 온 사회가 나서서 우리 사회의 자살이라는 심리적 내전 상태를 종식시켜야 한다.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현수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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