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직필]조용한 공천은 조용한 사익 추구
한동안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천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친명’을 심고 ‘친문’을 찍어내는 공천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지난 이 대표 체포동의안 처리과정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들었던 의원들에 대한 트라우마라는 심리적 접근도 있었으며 자신의 잠재적 대선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무엇이 진실이건 간에 공천의 목적에 이 대표의 사익 추구가 끼어 있다는 것이 다수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반면 국민의힘 공천은 조용하다는 평 일색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조용한 공천이 감동적이라며 승복한 분들의 감동적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과연 이 대표의 시끄러운 공천과 한 위원장의 조용한 공천이 이 대표만 사익을 추구했고 한 위원장은 공정을 추구했기 때문일까? 지나가던 소도 웃을 말이다.
경제, 경영학에서 정치와 경제 분야 지도자들의 의사결정에 대한 연구는 차고 넘친다. 학부 교과서의 시작은 정치인의 목적이 사회후생 극대화이고 최고경영자의 목적은 이윤 극대화라고 가정하지만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그렇게 놓고는 이해할 수 없는 리더의 행동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발전된 연구들은 리더의 목적에는 사익이 끼어든다고 본다. 그리고 이건 거의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전 세계 어디에서나 나타난다. 도널드 트럼프나 일론 머스크의 행동을 아름다운 가정하에서 이해하려고 들면 피곤해지기만 할 뿐이다. 흥미롭게도 최고경영자에 대한 연구들 중심으로 사익 추구가 실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보면 시끄럽게 일을 많이 하는 것과 조용한 삶을 즐기는 것으로 나누어진다. 이 대표와 한 위원장이 각각 전자와 후자를 대변하는 것이다.
리더의 사익은 대부분 권력에서 나온다. 권력의 원천은 돈과 사람이고 예산·재무·인사로 표현된다. 그래서 교과서에는 원래 사익을 추구하는 최고경영자는 제국 건설을 할 것이라고 보았다. 일단 권력의 원천인 규모를 키우기 위해 문어발식 확장을 하고 거기에 자기 사람을 심는 것이다. 그게 임원일 수도 있고 이사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의외로 아무것도 안 한다는 실증연구가 많았다. 구체적으로 신규투자를 안 하고, 기존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없고, 조용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일만 한다. 자기 주변 임원들의 연봉만 올려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의 생산성은 떨어진다. 생각해보면 이게 사익 추구의 정점일 수도 있다. 워라밸이라는 것이 돈과 여유의 접점을 찾는 것인데 리더가 조용하게 지낼 수 있으면서 돈과 여유를 누리는, 범인은 도달 불가능한 이상향에 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 그러면 도대체 이 대표와 한 위원장은 무엇이 달랐기에 행동이 정반대로 나타난 것인가? 두 명의 목적은 차기 대선 후보가 되는 것으로 동일하다. 대선 후보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 행동을 하는 것인데 일단 각자의 처한 위치가 달랐다. 이 대표는 행정·검찰권력이 없는 야당 1인자로서 스스로 경쟁자를 제거하고 우군을 심는 것이 대선 후보로 가는 길이었으나 한 위원장은 서슬 퍼런 대통령 밑 여당 2인자로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대선 후보가 되기는커녕 총선 후에 자기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조용히 윤석열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안는 것이 최적의 전략이다. 두 번째, 이 둘이 받고 있는 경쟁압력이 다르다. 이 대표는 당장 총선 후부터 잠룡들과 차기 대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한다. 경쟁압력이 강할 때는 당사자는 무엇이라도 하게 되어 있다. 그게 설사 똥볼을 차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반면에 한 위원장은 구조적으로 경쟁압력이 생길 수 없다.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이 있는 여당에서 잠룡들이 경쟁한다? 무모한 짓이다. 마지막으로 두 명의 보수구조(pay-off)가 다르다. 이 대표는 총선 결과에 따라 얻고 잃는 게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한 위원장은 성과연동 보수구조가 아니다. 국민의힘이 “대통령 대신 얼굴을 해주세요”라고 모셔왔고 총선 후 고정퇴직금을 받고 떠나는 구조이다. 즉, 돌아다니면서 사진이나 찍으면 그만이다.
지난 1월 김건희 여사 언급으로 짧은 ‘윤-한 갈등’이 부각됐지만, 며칠 후 한 위원장의 90도 폴더인사와 상경 기차 안의 ‘윤-한 대화’에서 한 위원장 행동의 모든 각은 잡혔다. 한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윤 대통령이) 민생에 관한 여러 가지 지원책이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 건설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고, 제가 잘 들었다.” 우리는 그 후 19차례 민생토론회에서 돈 퍼주고 항공사 마일리지까지 챙기는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에게 한마디도 안 하는 한 위원장을 보고 있다. 조용한 공천은 조용한 사익 추구가 끼어 있을 뿐이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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