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원의 말의 힘]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말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특정 경험, 특정 정보, 특정 이념, 특정 세력, 특정 정파, 특정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행태인 ‘반지성주의’가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놓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진영론과 음모론이 결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강요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권했던 ‘판단 중지(epoche)’도 도움이 된다. 가끔은 판단을 멈추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판단 중지’란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회의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요구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우 높은 수준의 계산과 통찰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기원전 360~270)의 말이다.
“회의(懷疑)는 현상과 판단 가운데에서 서로 반대되는 생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끌어내어 세울 수 있는 능력이다. 서로 맞서는 사태와 논증의 특성을 표현하는 같은 무게를 저울질해서, 즉 회의를 통해서 ‘판단 중지’에 이르고 ‘근심으로부터의 자유’에 이른다.”(섹스투스 엠피리쿠스 <피론 철학 개요> I. 18)
판단을 내리는 데 있어서 반대되는 말을 어떤 방식으로든 끌어내는 것이 ‘회의 능력’이고 그 반대되는 말들의 무게를 같은 값으로 계산할 수 있는 생각의 저울이 작동할 때에 생기는 힘이 ‘판단 중지’ 능력이다.
두 능력이 하나의 ‘생각의 근육’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숱한 현상과 숱한 문장에 대한 관찰과 계산의 과정이 요청되기 때문에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생각을 멈추고 판단을 중지하는 것은 좋은 판단과 아름다운 선택에 도움이 된다. 잠시 멈춤을 즐길 수 있음에서 성숙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기도 한다. 근심으로부터 자유까지 얻는다고 한다.
물론 뭔가 옳다고 떠드는 한쪽 주장에 휩쓸리지 않는 생각의 저울을 가져야, 다른 말로 소위 ‘내공’을 갖추어야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말이다.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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